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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인근의 광주는 물론 서울과 대구, 부산에서 4시간 넘게 차를 몰고 온 사람들로 주차장은 빈 곳이 없을 정도였다. 목포역·목포종합버스터미널·분향소 주차장부터 철재부두까지 구간을 실어나르는 45인승 버스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최고기온이 영상 19.9도까지 오른 따뜻한 봄 날씨였지만 추모객들은 가벼운 나들이 차림이 아닌 짙은 계열의 옷차림으로 가족들에게 예의를 갖췄다. 이후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과 연인들은 철책 너머 보이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세월호를 바라보며 가로 5㎝ 세로 70㎝ 짜리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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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외로울까 봐 지난주에 이어 다시 방문했다’거나 ‘3주기인 다음 주말에 못 올 것 같아 미리 왔다는’ 등 추모객들이 이 곳을 찾은 사연은 달랐지만 유가족을 격려하는 마음은 같았다.
부산에서 온 강은희(52·여)씨는 “오늘 아침 진도 팽목항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며 “예상보다 유가족들이 머무르는 시설이 열악한 거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강씨는 “정부나 정치인들의 관심이 저조하지만 시민들이 나서 십시일반 힘을 모아 가족들을 돕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애써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에서 온 안재홍(41·회사원)씨는 아내와 9살과 12살짜리 두 아들과 함께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 곳에 왔다. 안씨는 “상처투성이 세월호를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전부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며 “특히 미수습자들을 하루빨리 수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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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조은화(1반)양 어머니 이금희(48)씨는 손님맞이 컨테이너에서 딸뻘인 학생들과 마주앉아 “한 명의 실종자가 나오지 않도록 9명의 사람들을 모두 찾아달라”며 울먹였다. 미수습자인 권재근씨의 형 권오복(63)씨는 이망성 목사를 끌어안으며 고마워했다.
잇따르는 추모 물결에 자원봉사자들은 힘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목포 지역 33개 시민단체로 꾸려진 ‘세월호 잊지않기 목포지역 공동실천회의’ 소속 임성주(55)씨는 이 곳에서 노란 리본을 만드는 일을 돕고 있다. 임씨는 “안산 단원고를 지을 때 벽돌을 나른 한 60대 작업자가 목포신항을 방문해 아이들을 떠올리며 오열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목포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6일까지 4만 2700명의 추모객들이 신항만을 방문했다. 시는 지난 주말 추모인파에 동났던 노란 리본을 넉넉히 마련하고 직원과 자원봉사자를 곳곳에서 배치하는 등 추모에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