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시대)①금리정책 `변화`냐 `계승`이냐

김현동 기자I 2006.02.01 11:25:45

유가·부동산 정책변수 부각..인플레 타겟팅 논란

[이데일리 김현동기자] 앨런 그린스펀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벤 버냉키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전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눈과 귀는 이제 버냉키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어떤 통화정책을 제시할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버냉키가 이끄는 연준의 미래와 과제, 의미 등을 집중 점검한다.

버냉키는 1일(현지시간) 연준 의장으로 공식 취임한다. 아직까지 버냉키가 연준 의장으로서 어떤 정책을 구사할 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지난해 상원 인사청문회에서의 발언 등이 그의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지만 버냉키의 통화정책이 이전 그린스펀 의장에서 크게 벗어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버냉키 자신도 이 점을 분명히 했고, 전문가들도 버냉키의 통화정책 기조가 물가안정 하의 경제 성장이라는 종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린스펀 정책 계승이 최우선 과제"

버냉키는 지난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연준 의장으로 지명을 받던 날에도 그렇고 상원 은행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그린스펀 의장의 정책과 전략을 계승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그린스펀 의장의 정책과 전략`이란 물가 안정을 위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이미지일 것이다.

버냉키는 지난해 11월 인사 청문회에서 "장기적인 물가 안정세를 확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완전고용과 전반적인 경제안정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버냉키가 오는 3월28일 자신이 처음으로 주재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기금 금리를 25bp(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다수 이코노미스트들은 연준의 금리인상이 3월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다만, 버냉키의 긴축 기조가 3월 이후에도 이어져 일부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연방기금 금리가 현재 4.50%에서 5.0%까지 질 지는 미지수다.

◇유가·부동산 정책결정 최대 변수

버냉키의 향후 통화금융 정책 방향을 알기 위해서는 버냉키가 주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버냉키는 인사청문회 후 공화당 짐 버닝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미국 경제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과 부동산 경기 급냉을 꼽았다. 고유가와 부동산 경기가 연준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버냉키는 인사 청문회 당시만 해도 "미국경제는 현재 강력한 회복 과정에 있다"고 했었다. 그렇지만 버닝 의원에게 보낸 답변에서는 "에너지 가격 추가 상승은 미국 가계와 기업에 어려운 도전을 제기할 것이며, 에너지 가격이 더 오를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가능성은 낮지만 집값이 급격히 떨어질 경우 미국 경제의 실질 성장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비관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특히 부동산 경기에 대한 버냉키의 진단은 부동산 경기와 소비와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향후 미국 경기 회복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버냉키 신임 의장의 과제로 집값 하락을 막는 것을 최대 과제로 꼽기도 했다. 집값 하락에 이어 인플레이션 압력을 방어하는 것이 다음 과제로 지적됐다.

드레스드너 클라인워트 바세르슈타인의 글로벌 이코노미스트인 이안 하우드는 "버냉키의 최대 과제는 소비 약화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우드는 이 때문에 버냉키가 올해 말쯤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월27일 시카고 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 랜달 크로즈너(43)와 백악관 경제정책 보좌관 출신의 케빈 와시(35)를 공석인 연준 이사에 지명한 점도 버냉키의 실물 경제, 특히 부동산 금융에 대한 공백을 메우려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2001~2003년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을 지낸 크로즈너와 월가 변호사 출신의 와시는 모기지 등을 포함한 금융규제 문제의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인플레 타켓팅은 언제쯤 도입될까

버냉키의 통화정책 방향을 전망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인플레이션 타겟팅(물가안정목표제) 도입이다. 그동안 버냉키는 인플레 타겟팅 도입을 지지하는 입장을 천명해왔다.

그는 그러나 "장기적 측면의 인플레 진정을 위해 (인플레 타겟팅은) 장점이 많다"면서도 "그러나 충분한 협의를 거쳐 공감대가 형성돼야만 설정이 가능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다수 애널리스트들은 연준이 인플레 타겟팅을 도입할 경우, 물가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 사이에서 정책의 균형추가 인플레 쪽으로 좀 더 기울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인플레 타겟팅 도입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간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버냉키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플레이션 타겟터지만 그가 겨냥해야 할 인플레이션은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이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과잉 유동성이라는 지적이다.
 
CEA 의장을 역임한 멘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47)도 최근 "인플레이션 목표제라는 버냉키의 비전은 아주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유럽중앙은행(ECB) 등 다수 중앙은행이 인플레 타겟팅을 채택하고 있기는 하지만, 도널드 콘 이사와 로저 퍼거슨 연준 부의장 등이 이에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어 공식 채택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