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상용기자] HK저축은행(007640)의 최대주주인 퍼시피캡 퍼시픽 림 펀드(PPRF)가 국내 자금으로 조성된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드러나면서 이 펀드의 자금조성과 이동경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PPRF가 지난 2003년말 272억원의 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는 8개 국내법인과 1개 국내은행, 4개 해외법인 및 2군데 해외은행 등 총 15개 회사가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금을 미국 PPRF로 집결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환치기 수법까지 이용됐다는 법정 진술도 나왔다.
◇남광토건·월드인월드 등에서 272억 조달..환차기 동원
PPRF 대표로 있는 권덕만씨가 서울지법에 제출한 서면자료에 따르면 PPRF 자금은 권씨와 권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 등이 다른 국내 기업 및 창투사로부터 차입하거나 투자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조달됐다.
자금원을 살펴보면 ▲권씨가 대표로 있는 월드인월드개발(현 ㈜새로운성남)이 남광토건에서 빌린 돈 100억원 ▲권씨가 대주주이자 회장으로 있는 월드인월드가 투자한 자금 62억원 ▲월드인월드의 대주주인 동진산업과 태원전기가 펀딩한 자금 50억원 ▲권씨와 월드인월드가 담보를 제공하고 유치한 한솔창투자금 35억원 ▲권씨 개인 현금 25억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월드인월드개발이 남광토건에서 돈을 빌릴 당시 `월드인월드` 등은 연대보증을 섰었다.
이렇게 전액 국내에서 조달된 자금은 3군데 경로를 통해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PPRF로 모였다.
우선 남광토건과 동진산업 태원전기 한솔창투를 통해 조성된 185억원은 오영석 前 HK저축은행 대표가 운영했던 (주)토세베라에 집결됐다. 그리고 이 돈은 다시 홍콩법인인 차이나델타인베스트먼트와 하와이법인인 쿨라인베스트먼트, 미국 법인인 어큐인베스트먼트를 거쳐 PPRF로 들어갔다.
(주)토세베라는 외국명품 수입판매를 위해 오씨가 설립한 회사다. 차이나델타인베스트먼트와 쿨라인베스트먼트는 권덕만씨 소유의 회사라고 권씨측은 밝혔다.
다음으로 월드인월드의 투자금 62억원은 P&K USA(현 월드인월드 미국법인)로 송금된 후 미국 한미은행과 선트러스트뱅크를 차례로 경유해 쿨라인베스트먼트에 모인 뒤 PPRF에 투입됐다.
권씨 개인 현금자산인 25억원은 오영석씨와 오씨 가족 등 인편을 통해 일본으로 옮겨진 후 다시 어큐인베스트먼트를 경유해 PPRF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환치기수법이 동원됐다는 진술이 나온다. 권씨측은 법원에 "이 돈은 오씨와 오씨의 가족들이 일종의 환치기를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고, 이후 어큐인베스트먼트를 통해 PPRF에 투자됐다"고 설명했다.
◇권씨 고백 왜 나왔나
권씨가 PPRF의 실체를 공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난 5월 오씨가 `PPRF에 대한 권리가 오씨 자신에게 있다`며 권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빚보증을 서가며 조성한 펀드가 오씨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금조성 과정을 상세히 밝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서울지법은 권씨의 진술과 권씨가 제출한 입출금내역서 및 차용증 등을 검토,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
권씨는 일단 PPRF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과 대표권리를 인정 받았지만 PPRF가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게 된 셈이다. 이는 결국 권씨가 국내 자금으로 만든 PPRF를 외국계 사모펀드로 포장하고, 이 돈으로 HK저축은행을 인수해 사실상 HK를 지배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2003년 PPRF가 금감원에 HK저축은행 지분취득 신고를 하면서 PPRF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설립된 사모펀드로 주요출자자는 `하와이 치과의사협회` 등 외국인이라고 밝힌 것과 상반된다.
이에 대해 권씨측 변호인은 "권씨가 PPRF에 자금을 댄 것은 맞지만 HK저축은행 인수 과정에서 동원된 기법은 이종윤 전 HK대표와 오씨가 생각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씨는 "현재 오씨와의 유사한 소송이 미국에서 진행중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기 힘들다"며 인터뷰를 피했다. PPRF를 놓고 오씨와 권씨가 벌이는 소송은 국내에서 한 건이 마무리됐지만 유사한 소송이 미국 델라웨어주 법정에서 현재 진행중이다.
HK저축은행 관련자들간 법적분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난마처럼 얽혀있다.(왼쪽 표 참조)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2대주주인 선진씨엠씨와 1대주주인 PPRF간에 맞소송이 걸려있다. 지난달에 PPRF가 선진측을 상대로 신주발행유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이달 들어선 선진측과 이종윤 전 HK저축은행 대표가 공동으로 권씨의 배임죄를 물어 소장을 제출했다.
100억원을 `월드인월드개발`에 빌려준 남광토건은 돈을 받지 못해 연대보증인인 `월드인월드`와 권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HK저축은행측은 금명간 권씨를 상대로 대출받은 돈 110억원을 상환하라는 고발장을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