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에 증인이나 참고인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청문회를 형해화하는 물타기 전략에 불과하다”(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버티면 된다”..청문회 시작부터 파행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인사청문회가 지난 18일 마무리됐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고성과 파행으로 얼룩졌다. 가장 논란이 컸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시작 14분 만에 정회됐고,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 역시 여야 의원들이 착석하자 마자 개의 절차가 중단됐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문제삼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회의 도중 퇴장해 기자회견을 여는 등 청문회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도 자료 제출 문제로 개의 40분 만에 중단됐다.
증인과 참고인이 없는 청문회도 잇따랐다. 정성호, 정은경, 김영훈, 정동영, 배경훈 후보자는 증인과 참고인 없이 청문회를 진행했고 전체 17명의 장관 후보자 중 증인·참고인이 채택된 경우는 12명에 그쳤다. 심지어 이 중 5명은 아예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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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여야 간 합의가 불발될 경우 의석수를 앞세워 청문보고서를 단독 채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설령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더라도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지난 정권인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29명에 달했다. 이 같은 사례는 자칫 ‘버티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제재 없는 자료 미제출..거부 사유 규정 필요
이처럼 인사청문회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회의 인사청문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자료 제출에 대한 강제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다.
현행 ‘인사청문회법’ 제12조에 따르면 위원회 또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경우, 관계 기관은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사유서를 제출하면 제재 없이 넘어갈 수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제출하지 않아도 ‘경고’ 이상의 제재가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다 ‘사생활 보호’라는 모호한 사유가 자주 인용되면서, 이를 통해 자료 제출을 회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회가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 판단을 내리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는 현행 구조에 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자료 제출 지연시 지연된 만큼 청문회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자료 제출 거부 사유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사 항목·기준 필요..별도 검증 기구 도입도”
부실한 사전 검증 절차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전 인사검증 과정에서 허위 사실을 기재하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도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후보자는 사전 검증 체크리스트를 통해 병역, 범죄 경력, 부동산 거래, 위장전입, 납세 의무 등의 이행 여부를 예·아니오로 답변하며 필요시 서술형으로 작성하게 된다. 세밀한 검증이 어려운 구조다. 그러다보니 사후에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며 자진 사퇴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반복되는 부실 검증과 후보자 도덕성·공직윤리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사 검증의 항목, 기준, 절차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는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후보자 추천 단계에서 도덕성이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해야지만 국회 청문회에서 비로소 정책 검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도 “별도의 위원회 등을 구성해서 독립적인 임사 검증 기구를 만들어 도덕성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정 입법조사관은 “일각에서 청문회 무용론을 이야기하지만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임명권자에게도 일정한 제약을 준다는 점에서 청문회는 여전히 견제 기능을 갖고 있다”면서 “제도 도입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만큼 전면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