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DB형 기업연금, 왜 망가졌나

강종구 기자I 2006.02.22 11:29:32

철강 항공업체 등의 경영악화가 화 불러
기업의 연금 운용능력 부족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미국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이 악화 일로에 있다. 모간스탠리의 추정에 따르면 S&P500대 기업의 확정급여형 연금기금의 경우 2004년 순부채 규모가 대량 2400억달러(약 220조원)에 이른다.



난다 긴다 하던 미국 회사들이 망해가는 배경에도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이 있다.

지난해 9~10월 항공사인 노스웨스트와 델타, 자동차부품업체인 델파이 등 대기업이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중 하나도 이들 기업의 확정급여형 연금제도의 부실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철강, 항공, 자동차업체에 이어 다음은 통신업체가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기업연금의 대부분이었던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이 망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행이 이를 분석했다.

◇ 대기업 경영악화가 `화` 불렀다.

지난 2002년 이후 기업연금 부실로 위기에 몰린 기업들을 보면 철강업체나 항공사가 대부분이다. 모두 세계화에 따른 경쟁심화 등으로 경영위기에 봉착하면서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연금기금이 부실화됐다.

이들 기업이 파산 등으로 연금 급여를 지급할 수 없게 되면서 막대한 연금보험금을 지불하게 된 연금지급보증공사(PBGC)는 사상 최악의 재정위기에 빠졌다.

92년년 이후 연금지급보증공사에 대한 연금보험금 청구액은 연간 10억달러 미만에 머물렀다. 그러나 2002년부터 급증해 2003년엔 60억달러를 넘었다.

75~2004년까지 연금보험금을 청구한 상위 10개 기업의 면면을 보면 모두 철강업체거나 항공업체다. 이들 기업의 보상자수 비중은 전체의 55%에 이른다.

연금지급보증공사는 2002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뒤 매년 급증, 2003회계연도에 113억달러, 2004회계연도에는 233억달러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는 10년후 적자규모가 867억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주가폭락과 금리하락..대처 능력이 없었다

미국 기업연금의 부실을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2001년 이후 주식시장 버블 붕괴,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 FRB 전 의장이 연방기금금리를 1%까지 인하하면서 나타난 장기 저금리현상이다.

주가가 폭락하자 주식비중이 높았던 기업연금엔 막대한 운용손실이 발생했다. 운용손실로 연금의 자산은 크게 감소했지만 연금지급액이 미리 정해져 있는 확정급여형의 특성상 부채는 줄지 않았다.

또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에 투자해 낼 수 있는 수익도 갈수록 줄었다. 반면 할인율의 하락으로 부채의 현재가치는 급격히 증가했다.

운용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기업들의 대응은 미흡했다. 연금운용에 대한 능력이 떨어졌고, 관심도 부족했다는게 골드만삭스의 분석이다.

한은의 분석에는 빠져 있지만 연금운용의 실패는 다시 기업의 경영악화를 불러오는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기업이 일정금액만 출연하면 되는 확정기여형과 달리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은 투자위험을 기업이 부담한다. 이에 따라 연금의 손실은 기업의 기업의 흑자감소나 적자확대로 직결됐다.

종업원의 수명에 대한 기업들의 예측도 안이했다. 수명은 계속 늘었지만 기업들은 최근까지도 1983년에 작성된 사망률표를 사용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연금부채도 예상보다 커졌다.

◇ 자산-부채 만기, 심각한 불일치..연금지급 및 관리부담 과중

기업연금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대상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연금기금이 보유한 자산중에서 주식처럼 보유기간이 짧은 자산의 비중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장기채권 비중은 3분의 1도 안된다.



자산의 만기가 짧은 반면 연금 부채의 만기는 매우 길어 기업들의 연금운용 부담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기업연금 부채의 평균 만기는 12~16년에 이른다. 반면 자산의 만기는 3~4년이 고작이라 자산-부채의 만기불일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확정급여형의 재정이 확정기여형에 비해 빠르게 악화돼 연금지급 부담이 상대적으로 컸다. 93~2000년중 확정급여형의 자산증가속도는 확정기여형의 절반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3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반면 확정기여형의 부채는 오히려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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