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학들 "과거와 금리·물가 패턴 달라질 것"

김정남 기자I 2023.01.08 16:06:17

[전미경제학회 2023]
서머스 "구조적 장기침체 도래 않을 것"
로고프 "중국 영향에 실질금리 더 오른다"
구린차스 "인플레 완화 기대 이르다" 일침
스티글리츠 "글로벌 다자주의 복원해야"

[뉴올리언스=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앞으로 10년간 미국의 실질 중립금리는 연방준비제도(Fed)가 현재 예측하는 0.5%보다 상당히 높을 것입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갑작스러운 통화량 급증은 자산 거품을 키우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크리스틴 포브스 MIT 교수)

세계 경제학계 최대 행사인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2023’은 코로나19 이후 이어진 재정·통화 확대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 등까지 더해 재정 적자가 불어나고, 이에 따라 구조적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올해 AEA 총회는 3년 만에 대면 행사로 치러졌다. 미국 남부에 위치해 겨울에도 따뜻한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날씨와 더불어 열기를 더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가 7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연중 최대 경제학계 행사인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2023’에서 화상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서머스 “저금리·저물가 도래 없다”

서머스 교수는 총회 둘째날인 7일(현지시간)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로 돌아갈 것인가’ 주제를 통해 장기적인 실질 중립금리의 상승을 점치면서 “추후 인플레이션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는 물가 상승까지 고려한 금리를 말한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상태의 금리 수준이다. 현재 연준은 인플레이션 목표치 2%를 감안한 장기 명목 중립금리를 2.5% 안팎(실질 중립금리 0.5%)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서머스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특히 “지금 살펴야 할 중요한 질문은 다시 (코로나19 이전과 같은) 구조적 장기침체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라며 “그 해답을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렵지만, 우리는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조적 장기침체 용어는 앨빈 한센 하버드대 교수가 1938년 처음 사용했으며, 서머스 교수가 2014년 다시 들고 나와 화제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에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투자 기피 탓에 저물가·저금리·저성장이 한꺼번에 닥쳤는데, 2020년대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는 의미다.

서머스 교수가 가장 강조한 것은 정부 지출의 추가 확대 가능성이다. 그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과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은 정부부채를 상당히 더 많이 쌓았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35~40%포인트 오르면 실질 중립금리는 80~100bp(1bp=0.01%포인트) 상승한다”고 추정했다.

실제 미국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당시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06.0%였다. 그런데 미국 정부가 팬데믹 이후 역대급 재정 지출을 단행하면서 이듬해인 2020년 127.7%까지 뛰었다. 2021년의 경우 121.7%였다. 이 수치가 120%를 넘긴 것은 미국 역사상 2019~2020년 2년밖에 없다.

서머스 교수는 또 “미국 정부는 인구 증가 압력에 따라 교육, 의료 등에 재정 확대 경향이 더 커질 것”이라며 “게다가 아시아 국가들은 국방 지출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인구구조와 지정학 우려 역시 나랏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202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는 훨씬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발언은 경기 침체와 함께 2010년대와 같은 저금리가 도래할 것이라는 근래 금융시장 분위기와는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머스 교수는 “이전과는 다른 금리 패턴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역시 실질금리 상승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이날 ‘재정·통화정책의 정치경제학’ 주제를 통해 “중국의 영향으로 실질금리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40년대 이후 미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중 통계(미국 경제분석국)를 직접 소개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제2의 냉전 상태에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하게 느껴진다”며 “재정 적자는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미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은 3.6%다. 역대 가장 낮다. 이 수치는 1952년 3분기(16.0%)를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왔다. 로고프 교수가 소개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은 오는 2020년께 200%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가 7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연중 최대 경제학계 행사인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 2023’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스티글리츠 “글로벌 다자주의 필요”

두 인사뿐만 아니다. 크리스틴 포브스 MIT 교수는 “재정 지출이 과도해져 정부 부채가 급격하게 늘면 장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또 통화량이 갑자기 증가하면 자산 거품을 키우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완화 기대감을 두고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석학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이날 글로벌 다자주의(multilateralism)의 필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등은 글로벌 협력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그러나 새로운 지정학 위기는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까지 연일 미국 중심의 산업정책을 펴는 것을 두고 글로벌 전반에 손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광물 등의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의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리스크”라며 “또 (미국의 직접 생산에 따라) 생산비가 높아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위험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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