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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타고난 그림 솜씨로 17세에 연합신문 전속 만화가로 데뷔했으며, 한국전쟁 후 한국 만화계를 세우고 이끌었다.
특히 그가 그린 네 컷의 ‘고바우 영감’은 격동기 세태를 풍자하고 우리 국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하면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고바우로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육군본부가 발행한 ‘사병만화’에 첫선을 보인 후 ‘만화신문’ ‘월간희망’ 등을 거쳐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주요 일간지에 게재됐다. 1958년 경무대(현 청와대)의 절대권력을 비판했다가 만화임에도 허위보도 유죄 선고를 받은 ‘경무대 똥통 사건’을 겪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금자 씨와 아들 규정 씨, 딸 규희·규연 씨가 있다. 빈소는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며, 발인은 10일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