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8일 독일 드레스덴공대 연설을 통해 제시한 한반도 통일 구상은 대북지원 확대를 골자로 한 3대 제안을 담고 있다. 민간교류, 경제교류, 국제교류를 확대해 공동번영을 위한 평화통일을 앞당기자는 내용이다. 북한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경우 앞으로 통일 프로젝트의 로드맵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 당장 적극적 호응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한은 30일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독을 품은 흉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실명비난한 데 이어 ‘제4차 핵실험’까지 언급하며 도발을 이어갔다.
◇ 朴대통령 실명 비난하며 핵실험 위협
박 대통령의 통일 행보가 계속될수록 북한의 도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로켓 발사 규탄 성명을 비난하면서 “핵억제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도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은 지난 14일 국방위원회 성명으로 미국에 맞서 ‘핵억제력’을 과시하는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밝히고 난 후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북한이 언급한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은 기존의 플루토늄이 아닌 우라늄을 이용한 핵실험이나 수소폭탄 실험 등을 염두에 둔 표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야만행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민군 군관 김경호의 발언을 실었다. 그는 “지금 박근혜는 유럽 나라들을 돌아치며 그 무슨 ‘통일’이니, ‘공동번영’이니, ‘교류’니 하는 낯간지러운 수작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고 최근 박 대통령의 네덜란드·독일 순방을 헐뜯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미소를 띄우면서 속에는 독을 품고 우리를 해치려고 발광하는 박근혜의 그 뻔한 흉심을 우리는 낱낱이 꿰뚫어보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했다. 기사 보도 시점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의 3대 제안을 이렇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최근 한국 군의 북한 어선 나포 사건에 대해 군대와 적십자회, 직업총동맹 간부와 주민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형식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 직후라는 시점과 맞물려 북한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해석도 있다.
◇ 드레스덴 선언 3대 제안 실효성은?
박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내놓은 3대 제안은 집권 2년차 대북정책의 큰 틀을 바꾸는 전환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 동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등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북정책의 콘텐츠를 채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이러한 제안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5·24 조치’를 사실상 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연설 직후 “우리 국민이 납득할만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을 때까지 5.24조치는 유지돼야 한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이라면서도 “다만,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협력과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 등은 국민적 공감대를 기초로 단계적으로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북 교류를 제한하는 5·24 조치를 완화하지 않는 한 북한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놓고 진정성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후속조치를 지켜보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남측의 의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제4차 핵실험까지 언급한 마당에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가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박 대통령이 남북교류와 핵 문제를 연계했기 때문에 앞으로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북한이 부정적 반응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