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기회가 줄어들었고 보상이 적기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벤처기업의 성공확률이 낮고 그에 비해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성공확률이 낮은 것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인력을 공급해주는 대학, 벤처캐피탈과 금융권, 아웃소싱업체, 정부의 R&D정책 등과 같은 인프라들이 하나 같이 미흡하다. 산업구조도 대기업위주다. 대기업들이 벤처들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구조에선 벤처정신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반면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는 너무 크다”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란 무슨 얘긴가.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를 예로 들어보자.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란 금융권들의 리스크 관리책임을 기업에 전가시키는 제도다. 기업을 접어야 할 시점을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CEO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표이사는 절대로 스스로 기업을 접을 수 없다. 사업을 접는 순간 기업의 채무는 개인의 빚이 되기 때문이다. 대표이사는 끝장을 볼때까지 가게 된다. 결국 대표이사는 신용불량자가 된다. 반면 미국에선 파산을 신청하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빚잔치를 하고, CEO는 실패의 경험을 살려 재도전할 수 있다”
-CEO 나아가 리더의 역할이 참 중요한데, 리더란 무엇인가.
“리더야말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21세기의 핵심 키워드는 탈권위주의다. 과거는 권력과 지식을 소수의 전문가집단이 장악하고 있고, 이것이 부분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시대였다. 지금은 파워와 지식이 대중에게 있고 이들의 참여를 통해 지식이 공유되는 시대다. 탈권위주의 핵심은 개인의 가치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20세기의 리더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21세기의 리더십은 리더에게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부여하는 것이다. 예전엔 자리가 리더십을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조직원들이 편해졌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과거의 팀원은 시키는 것만 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권력과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만이 인정받는 시대다. 한마디로 리더나 팀원이나 숨을 곳이 없다. 그러니까 수평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CEO의 그릇만큼 큰다고 한다”
-따님도 공부를 잘 한다고 들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나.
“한국의 부모들은 스스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한다. 그런데 사실 자녀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절대로 크지 않는다. 자녀가 부모 말대로, 생각대로 커 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이런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그렇게 책 읽으라고 하면서 본인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녀들에겐 공부하라고 해놓고는 TV를 켠다. 그래선 반발만 생긴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환경을 바꿔주고 롤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다”
-안 박사의 부친께서는 안 박사의 롤 모델이었는가.
“그렇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신문에 난 적이 있는데 신문배달 하는 소년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료진료를 해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올해 여든이신 데 환자 볼 때 말고는 계속 책만 읽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님께선 50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전문의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기도 했다. 내가 뒤늦게 공부하러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싶다”
-취미는 있나. 골프는 치는지.
“책 읽고 가족들과 같이 영화보는 게 취미다. 존 그리샴의 소설 좋아한다. 최근에 이노센트 맨 읽었다. 골프는 못배웠다. 미국에서 배워 볼려고 했는데 안되더라. 주말에 글 쓰는 게 가장 큰 보람인데 골프치면 그걸 못한다. 또 내가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이라 겁나서 안 배운 측면도 있다. 골프가 너무 재밌다고들 하지 않나”
-앞으로의 인생계획은 무엇인가.
“일은 계획을 세워 하는 편인데, 인생계획은 안 세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의사 그만둘 때도 그랬다. 아버님 보면서 의대를 갔기 때문에 가운 입고 환자 보는 게 내 미래모습이었고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살다 보니까 의사 그만두게 되더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면 저절로 나타나게 되더라”
-마지막으로 안연구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존재의미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존재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때다. 디즈니라는 회사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회사다. 기업의 존재 의미는 사회를 풍요롭게 해주는 것일 게다. 그런 의미에서 안연구소의 존재의미는 IT기술을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회사의 비전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적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보안회사로 성장하고 싶다”
안철수 박사는 2시간 남짓한 인터뷰 내내 조금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알았는데, 여름감기에 걸려서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그는 대중에게 알려진 88년 이후 20년간 한결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단아함과 성실함, 도덕성과 실력을 모두 갖춘 경영인. 이 인터뷰는 이같은 기존의 관념을 그대로 확인하기 위해서 기획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백한다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고정관념을 깨트릴 만한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했다.
안 박사에게 물었다. “앞으로 20년은 어떤 이미지로 남고 싶습니까?” 내딴에는 개인의 비전 같은 것을 물은 셈이다. “그런 것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니까 좋게 봐주시는 것이죠” 우문현답이었다. 변화의 격랑속에서 20년동안 한결같이 초심을 잃지 않았던 인간 안철수. 그에겐 앞으로 20년도 초심을 잃지 않을 만한 우직함이 있다. 안철수 박사의 얼굴이 그처럼 어려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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