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생활정보신문 가로수닷컴의 이의범사장에게는 항상 "노동운동가에서 경영자로의 변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80년대 암울했던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해 싸웠던 학생운동가중 벤처기업 창업에 성공한 몇 안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왠지 이런 표현은 식상하다는 느낌이다. 그가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던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정확한 현주소가 운동가가 아닌 주목받는 벤처기업의 경영자라는 점이라는 게 그 이유다.
"운동가에서 벤처기업가로의 변신 계기는 무엇이냐"는 상투적인 그러나 빼먹을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부터 할 줄 알았습니다. 저의 과거사를 조금이나마 하는 분이면 항상 물어보는 단골 메뉴니까요. 지난 89년 독일의 통일과 소비에트연합의 붕괴가 결정적인 계기였지만 여러가지가 겹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이 생활정보신문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지난 88년 수배를 받으며 고향인 대전을 비롯해 광주 등을 떠돌아 다니던 때였다.
그 당시는 생활정보신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교차로"가 카이스트(KAIST)를 중심으로 대전지역으로 퍼지고 있었고 광주 "사랑방" 등 각 지역 정보신문이 하나 둘씩 생겨나는 초기시장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베를린장벽의 붕괴,소비에트연합의 해체,이어진 독일 통일이라는 세계사적인 사건은 이 사장의 세계관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탈이데올로기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시기로 정하고 3D 업종이 아닌 기간산업 노동운동에 대한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사장은 이런 생각을 갖고 지난 90년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하지만 한국통신과 맺은 인연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장에게 기간산업 노조활동 보다는 정보통신쪽으로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장은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목적은 기간산업의 노조활동에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기업조직의 관료주의가 종전에 머리로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덤으로 하이텔 단말기가 앞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재산이었습니다"
이 사장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대학교(서울대 계산통계학과 82학번)를 중퇴하고 노동현장에서 혁명가를 꿈꾸던 한 젊은 청년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사건이 2~3년 사이에 연달아 발생한 것이다.
이 사장이 노동운동가의 때를 어느정도 벗고 경영자로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은 지난 91년. 이 사장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생활정보신문이 유독 서울에서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 친구 5명과 서울 양재동에 "가로수"라는 생활정보신문업체를 설립했다. 대전에서 눈여겨 보았던 생활정보신문과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첫 출발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에피소드지만, 신문을 찍어놓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배포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등의 앞뒤가 뒤바뀐 토론으로 밤을 샐 때가 많았어요. 운동하던 사람들이 사업가로 변신하는 한계점에 부딪힌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사장은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경영자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광고영업에 배포, 인쇄에 이르기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노동자"에서 "경영자"로 위치가 정반대로 바뀐 것도 어려움이었다.
한국통신 재직시 마음에 두었던 정보통신과 생활정보의 접목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갔다. 98년 PC통신과 인터넷 생활정보(www.garosu.co.kr)에 이어 99년에는 쇼핑몰( www.garosushop.co.kr)서비스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사장은 아직 온라인으로 무게중심을 완전히 옮길 때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시너지를 높여 나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은 오프라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며 "앞으로 시의적절하게 비중을 조절하는 문제만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성(오프라인)을 바탕으로 성장성(온라인)에 대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는 논리다.
이 사장은 또 "기회가 오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시대의 변화에 철저히 준비해야 하지만 무리하게 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다"며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남들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사장의 경영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준비론과 반보론"
이런 경영관은 창업 10년을 넘어선 가로수닷컴의 행보에 그대로 묻어나 있다. 현재도 활발한 다각화를 추진중이지만 자신없는 분야엔 아예 눈을 돌리지 않는다. 생활정보신문이라는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관련 다각화가 중심이다.
이 사장은 "홈쇼핑도 아직 주력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원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이죠. 방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생활정보신문과 전국에 점조직 처럼 퍼져있는 배포망을 이용해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는 전략입니다. 현재 추진중인 부동산투자신탁(리츠)사업도 이런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색 등 쌍방향성이 강조되는 디지털 방송시대에는 생활정보방송이 또다른 홈쇼핑사업의 형태를 띨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났다.
특히 국내에서 4가지 특허를 취득한 1시간 배송시스템은 가로수닷컴의 홈쇼핑사업에 든든한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로수닷컴은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CATV 추가 홈쇼핑사업자로 선정된 한 업체와 배송 관련 협의를 진행중이다.
가로수닷컴이 최근 비비시모(Vivisimo)를 통해 인터넷 검색 포털사업에 진출한 것도 역시 기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가로수닷컴이 벤처기업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소 의아해 합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생활정보신문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가 인터넷 비즈니스를 위해 연구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로수닷컴이 인터넷에서 구현하는 대부분의 기술이 이 연구소에서 개발됐다는 것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99년 설립된 가로수닷컴연구소는 지난 3월 무선통신망을 이용한 신용카드 승인 및 결제시스템과 관련한 특허를 출원하는 등 정보통신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 비비시모의 검색엔진은 현지에서 강력한 검색 엔진(이사장은 더욱 정확히 말하면 검색엔진이 아니라 클러스터링 기법이라고 설명하곤 했다)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비시모의 검색엔진에 대한 한국내 독점판매권과 상표권 사용, 1억원 출자의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도 가로수 연구소의 기술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사장의 설명이다.
가로수닷컴연구소는 비비시모 엔진을 적용할 수 있는 한글화 개발을 완료했으며 현재는 일본어와 중국어 버전도 개발중이다.가로수는 비비시모 포털사업을 첫 해외 진출 사업으로 설정하고 일본 홍콩 필리핀 지역 등으로 사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가로수닷컴은 최근 일본 미디어랩업체인 CA(사이버에이전트)사로부터 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45억원을 투자받아 웹광고사업에도 진출했다. 투자자금중 11억원 가량은 CA코리아에 투자, 자회사로 편입시켰으며 올 하반기중 주간지 발행을 계획중인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미디어랩 업무를 맡기로 했다. 가로수닷컴은 현재 오마이뉴스의 주요주주다.
가로수닷컴이 항상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지난 98년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등 주요 일간신문이 생활정보신문업계에 뛰어들었을 때 가장 긴장했다고 이사장은 회고했다.
그러나 주요 신문의 진출과 이후 실패의 과정은 역설적으로 가로수 등 생활정보신문의 입지를 더욱 굳혔다. 탁월한 브랜드 인지도와 전국적인 배포망을 갖춘 일간신문조차 생활정보신문사업에서 실패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생활정보신문의 "진입장벽"을 한단계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가로수닷컴은 이제 수도권을 중심으로 1개의 직영점과 25개의 프랜차이즈를 보유한 국내 3대 생활정보신문업체로 발돋움했다. 올해 매출과 순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45%와 77% 증가한 320억원과 3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사장은 "기업의 가치는 장기적으로 내재가치에 수렴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해 나가면서 기업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주력해 안정적인 배당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경영자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생활정보를 바탕으로 반걸음씩 앞서나가려는 가로수닷컴의 행보가 주목된다.
<이의범사장 이력>
64년 대전 출생
82년 대전고등학교 졸업
82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입학
84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중퇴
91년 가로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