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잠비나이 ''적벽''
판소리 ''적벽가'' 통해 고전의 역할 질문
강렬한 사운드에 시각적 요소 극대화
높은 완성도로 음악적 확장 보여줘
[김현희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수석] 거문고·해금·피리 등 우리 악기와 함께 전 세계를 누벼온 5인조 밴드 잠비나이가 ‘적벽가’를 통해 우리를 무자비한 전쟁터의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저항할 틈도 없이 시뻘건 불구덩이에 함께 뛰어든 관객은 피와 절규, 죽음의 공포가 뒤섞인 끔찍한 아비규환을 눈앞에서 목도한다.
 | | 잠비나이 ‘적벽’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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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18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전통예술 부문에 선정된 잠비나이의 공연 ‘적벽’이 지난달 27~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올랐다. 코첼라, 글래스톤베리 등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까지 접수한 잠비나이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적벽’은 전장의 풍광 그 자체였다. 총 9장으로 구성된 공연은 소리꾼 오단해(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이수자)의 ‘적벽가’ 한 대목으로 시작한다. 판소리의 서사가 공연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곧 온몸을 파고드는 잠비나이 특유의 폭발적인 사운드가 극장 전체를 집어삼키듯 공간을 메우고, 전장을 방불케 하는 대담한 조명과 영상, 구조물이 압도적인 몰입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강렬한 사운드, 이와 대비되는 침묵 속 작은 울림은 하나의 악기로 시작해 서서히 번져나간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몽환적 감상은 집요하게 관객의 숨통을 조인다. 관객은 그 끝이 불구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밀도 높게 쌓여가는 음악의 감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뛰어든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느끼는 참혹함과 처절함이다. 그러나 그 끝은 분노와 슬픔뿐 아니라 진혼과 해소로 번지며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 | 잠비나이 ‘적벽’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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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은 영웅 서사가 아니다. 수많은 민중과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잠비나이는 전투의 이미지 묘사와 몰입을 위해 사운드의 질감을 재구성하고 시각적 요소를 극대화했다. 거문고와 해금 등 모든 악기는 전쟁터의 병사가 됐다가 화살이 되고, 파도가 되고, 혼이 된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인 ‘적벽화전’에 이르면 판소리의 사설조차 절규가 된다. 쉴새 없이 쏟아지는 조명은 화살처럼 무대 위에 박힐 듯 떨어진다.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무대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화살의 영상과 승천하는 영혼을 묘사한 듯한 조명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16년간 호흡을 맞춘 잠비나이의 음악적 완성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적벽’을 통해 음악적 확장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잠비나이의 막강한 출력을 충분히 감당해 낼 공연장의 선택, 그리고 밴드의 공연 형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감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잠비나이는 이번 공연을 ‘고전은 현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다. 충분히 그들의 메시지를 들은 공연이었다.
 | | 잠비나이 ‘적벽’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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