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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합의 현실적 고민도 이해된다. 괴롭힘 사건은 조합원 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특정 조합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내부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등 회피가 조합의 기본 원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립’을 내세운 침묵이 오히려 2차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실무에서 자주 목격된다.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특성상, 사용자 측의 조사만으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조합은 피해자 요청이 있을 경우 조사 감시자 또는 동행자로 참여할 수 있고, 필요시 외부 전문가 연결, 피해자 보호 조치 모니터링 등 실질적 대응을 할 수 있다. 이는 노조의 핵심 책무이자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실무 현장에서는 “회사가 알아서 처리할 일”, “우리 조합원끼리 갈등을 만들지 말자”는 논리가 노조 내부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반복적 모욕, 고립, 부당한 지시와 같은 괴롭힘은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근로환경 침해다. 이를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하는 것은 오히려 조직 내 권력자 편에 서는 결과를 낳는다.
괴롭힘 조사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단순히 피해자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사의 형식적 절차를 보완하고, 조사 시스템의 한계를 견제하며, 조직 구성원 전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감시자이자 중재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 역할이 실종되었을 때, 피해자는 이중의 상처를 입고, 조합에 대한 신뢰 역시 회복되기 어렵다.
노동조합은 이제 직장 내 괴롭힘 대응에서 ‘자기 책무’를 보다 엄격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를 외면하거나 애매하게 거리를 두는 방식은 더 이상 조직 안정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침묵과 균형 사이에서 머뭇거리기보다, 책임 있는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이제 재정의되어야 한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