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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ETRI 인력구조는 지난해 4분기 기준 연구원 96명, 선임연구원 408명, 책임연구원 1259명으로 나타났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올해 ETRI에 대한 정부출연금은 약 1016억원으로 전년 대비 7.6% 삭감됐다. ETRI 총 예산(6128억원) 중 출연금 비중은 16.6%에 불과하고, 정부수탁과 민간수탁이 대부분이다. 연구자들이 외부 과제 수주에 몰릴 수 밖에 없는 형국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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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환경에 내부 문제가 더해져 젊은 연구자들을 지나친 수주 경쟁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익명 게시자는 “KAIST 대학원생도 목소리를 내는데 외부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내부는 살 궁리, 정치질로 자리 유지에만 급급하다”며 “비정상적인 인력구조에 내부 파벌에 의한 장기간 보직, 부당 처우에 따른 신입 이탈, R&D 예산 삭감이 더해져서 기관이 어려운데 구조적 문제로 생산성이 낮아진 상황에서 매번 내세울 것만 찾아드니 위탁용역으로 먹고 사는 기관으로 낙인 찍혀버렸다”고 지적했다.
익명게시판에는 책임연구자들의 책임 회피, 후임에게 일 몰아주고 성과 뺐기 등을 지적하는 글들도 다수 올라와 있다.
젊은 연구자들이 오자마자 그만두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익명 게시자는 “본인은 신입 연구원들 연봉의 2~3배를 받으면서 일은 나이가 어린사람에게 넘기고, 일부 여직원은 모임에 애를 챙겨야 한다는 등 핑계로 나가면 연구성과는 누가 만들어내야 하는가”라며 “젊은 연구자들도 워라벨을 누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데 ‘꼰대질’이 만연하니 분위기는 점차 망가졌고, 불평등한 업무분배 등에 얼마 안된 신입까지 그만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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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문제에 인력 이탈도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 게시자들은 “연구소 처우도 개선되지 않는데 분위기 망치는 것들 때문에 더 나가고 싶다”며 “연봉은 높으면서 입으로 일하는 이들 때문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나 대기업, 교수로 가는 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ETRI측에서는 특정 직급 인력이 많은 구조적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세대갈등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성진 ETRI 행정본부장은 “박사학위를 하고 오면 대부분 선임연구원으로 들어오고, 이분들이 10년 지나면 책임연구원이 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책임연구원이 많지만 세대갈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다만 1990년대 초반과 달리 대기업들 처우가 연구원 대비 좋아지면서 인력들이 이탈하고 있고, 처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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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에서는 R&D 예산 삭감 여파로 세대갈등이 심해졌다는 입장이다. 다만, 연구소 내에서 사람, 부서별로 분위기가 달라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상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ETRI 지부장은 “익명게시판에서는 과격하게 의견이 증폭돼 나타날 수 있고, 연구소 내부에서도 사람, 부서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도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 용역을 줄 돈도 부족한데 장비 구매, 인건비 지급 등 총체적인 자금 문제로 어려워지면서 세대 갈등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부장은 “세대 갈등은 노조차원에서도 고민하는 문제”라면서 “다만 부족한 예산부터 확보해놓고 세대간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