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통령’ 브레이브걸스는 2021년 상반기 역주행의 일상화를 주도하며 ‘롤린’과 ‘운전만 해’로 무명을 완전 떨쳐냈지만 ‘치맛바람’ 이후 위세가 뚝 떨어졌다. 열기를 이어갈 좋은 곡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란 키워드로 비대면 시대를 관통한 에스파의 2021년 ‘넥스트 레벨’ 선풍은 가공할 만했다. 하지만 역시 이 걸그룹도 이듬해 여름에 발표한 ‘걸스’와 ‘도깨비불’이 전작에 전혀 못 미치는 실패를 맞으며 존재감이 흐려졌다.
대중이 그 노래에 납득하고 품에 안지 않으면 가수는 나타났다가도 곧 사라진다는 진리가 요즘처럼 실증되고 있는 때는 없는 것 같다. 호평을 받았던 ‘살짝 설렜어’와 ‘돌핀’으로 한 시점을 풍미한 오마이걸도 ‘던 던 댄스’ 이후 행보가 확실히 둔해졌다. 스타덤을 안겨준 곡보다 조금이라도 다르고 감칠맛을 부여한 곡으로 기세를 이어가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그룹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블랙핑크는 2022년 방탄소년단(BTS)에 맞설 정도의 위용을 과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핑크 베놈’과 ‘셧다운’은 예술적 인정 측면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웹진 이즘의 필자 박수진은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달려가는 그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고 썼다. ‘K팝 스타일’이라고 할 짧은 반복구의 후크는 한때 대중적 파괴력을 발휘했지만 이것을 과잉 사용하면서 대중이 느끼는 호감은 확실히 줄었다. ‘감각’이 판칠 뿐 ‘감동’이 없는 것이다.
방탄소년단도 조금 걱정이 된다. 2020년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6곡의 빌보드 넘버원 등극이라는 전인미답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곡 자체가 주는 매혹 포인트가 탁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전 ‘불타오르네’, ‘봄날’, ‘피땀눈물’, ‘DNA’가 보여준 촉과 날이 사라졌다고 할까. 물론 영어로 된 곡이라서 비교분석이 힘들고, 그러한 ‘월드팝화’ 때문에 미국상륙에 성공했을지 몰라도 곡의 질적 흡수력보다는 ‘아미’라는 팬덤의 조직적 숭배의 산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K팝의 세기적 성공을 견인한 그룹답게 그들이 앞으로도 버텨줘야 K팝이 살고,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1순위 조건은 말할 필요 없이 더 완성도를 기한 음악, 더 호소력을 지닌 곡의 생산이다. 하지만 잘된 그룹들일수록 후속 히트에 대한 무한 압박 때문인지 곡에 대한 고민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 가요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소프트 파워와 문화적 매력지수의 시작은 음악에 있어서는 무조건 곡인 것이다.
가수의 존속을 결정하는 곡 하나의 힘은 하이브의 걸그룹 르세라핌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터진 멤버의 학폭 논란으로 미래가 불투명할 만큼 휘청거렸지만 잠시 후 시련이 닥칠수록 더 강해진다는 뜻의 제목이 자신들의 처지와 오버랩 된 곡 ‘안티 프레자일’이 호응을 얻으면서 스타덤 편입에 성공했다. 후렴과 랩 파트도 새로워 팬들의 흥얼거림을 자극했다.
‘러브 다이브’ 등 3곡을 지난 한해 내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렸던 아이브의 안착은 멜로디 리듬과 가사의 상통이라는 곡 구성의 기본을 실현한 덕분이었다. 일각에서 2022년의 노래라는 평가를 받은 (여자)아이들의 ‘톰보이’도 그 시점에 하나의 유행이었던 1990년대의 팝 펑크 기운을 살짝 빌려오는 동시에 악센트의 언어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면서 일대 주목을 받았다. 창의적인 곡으로 대중의 포옹을 부르는 성공일기를 써낸 것이다.
대중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 곡이 탄생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작곡자와 제작자는 중도에 멈춰서는 안 된다. 납품 기일에 쫓기고 반복녹음에 지쳐서 타협하게 되면 끝내는 배제되고 만다. 개별적 성공은 물론 K팝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작곡자와 제작자의 분발이 요구된다. 결국은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