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용카드 대란`이 그랬듯이, 신용도를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풀려나간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금융시장에 연쇄 충격파를 불렀다. 모기지 업체들은 줄도산하고,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뺏기고 거리로 나앉게 된 미국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파장은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 타격을 가했고, 채권과 외환, 상품시장도 이미 태풍의 영향권에 접어들었다.
`모기지 부실→부동산 경착륙→소비위축→美 경기침체→글로벌 성장둔화`라는 비관적 시나리오가 시장에 확산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하에서 글로벌 시장을 떠받쳐 온 유동성이 급격히 안전자산으로 몰릴 경우 파문이 얼마나 오래, 강하게 지속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시장불안의 핵심 요인으로 등장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원인과 연쇄 충격의 메커니즘, 금융시장 및 경제에 미칠 영향과 전망 등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12일 뉴욕증권거래소. 개장전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뉴 센추리 파이낸셜` 주가는 개장전 56% 폭락했다. 정규장이 시작되자 곧바로 거래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미국 2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뉴 센추리의 부도 가능성이 시장에 퍼지면서 투자자들은 저주에라도 걸린 듯 주식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이날 개장전 폭락으로 뉴 센추리 주가는 1.66달러까지 미끄러졌다. 1년전 50달러 전후였던 것에 비하면 휴지조각이 된 셈이다.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뉴 센추리의 주가는 최근 서브프라임 업계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13일 뉴 센추리의 거래는 여전히 중단된 상태였지만 `모기지`와 조금이라도 연관있는 기업들은 모두 급락했다. 그저 모기지 시장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던 서브프라임이 금융시장의 복잡한 연결고리를 타고 경제 전반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곪을 대로 곪았다..줄줄이 파산
서브프라임 부실이 처음 수면위로 부각된 것은 HSBC가 지난 2월8일 부실 모기지 대출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고 털어놓으면서 부터다.
이에 앞서 모기지 렌더스 네트워크 USA는 폐업했다. 오우닛 모기지 솔루션스도 이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투자자들의 생각은 `예고된 악재 하나가 터졌나 보다` 정도였다.
하지만 대형 금융기관이 모기지 부실을 경고하고 나서자 모기지 업계는 비로소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후 모기지 업체인 레스매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뉴 센추리 파이낸셜과 프레몬트 제너럴이 부실로 4분기 실적발표를 연기하는 등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미국 19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인 노바스타 파이낸셜도 작년 4분기 흑자를 올렸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144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도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기지 업체에 대한 투자의견이나 등급하향이 잇따랐다. 서브프라임 업체 뿐만 아니라 제너럴 모터스(GM)와 같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회사를 갖고 있는 기업들도 부실을 떠안게 생겼다.
◇확산되는 불안감..당국도 조사 착수
최근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 분식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데다 파산 위기로까지 몰리면서 서브프라임 공포는 극에 달했다.
뉴 센추리는 1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현금 등 유동성이 부족해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모간스탠리 등 투자은행들의 채권 환매 요청을 들어줄 수 없다"며 "모든 환매 요구에 응하려면 84억달러가 필요하지만 자금이 없다"고 밝혔다.
뉴 센추리 파이낸셜이 이날 개장 전 거래에서 56% 폭락함에 따라 뉴욕증권거래소는 정규장 거래를 중단시키고 상장폐지 가능성에 대해 검토에 들어갔다. 13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가 시작됐고 캘리포니아 주 검찰이 증권 거래법 위반과 분식회계 혐의로 소환장을 발부하면서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월가에서는 뉴 센추리 파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상태다. 최근 파산을 선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만 줄잡아 20여개에 달할 정도로 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같은 서브프라임의 문제는 신용도가 중간 단계인 `알트-에이` 뿐만 아니라 신용도가 우수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우대금리 `프라임` 대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만 브라더스는 최근 미국 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조정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험이 일반 모기지 시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주택경기 둔화·금리인상·모럴헤저드`..부실 3박자 척척
서브프라임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리스크를 몰랐을리 없다. 그런데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주택경기와 금리인상, 모기지 업체들의 도덕적 헤이가 맞물리면서 곪을 대로 곪았던 서브프라임 문제가 터졌기 때문이다.
주택붐이 일면서 모기지 업체의 대출 경쟁도 심화됐다. 처음에는 `더 낮은 금리`를 내세워 고객들을 유혹했지만 수익성이 나빠지자 이제는 대출 기준을 완화했다. 서브프라임 업체들은 "은행에서 `노`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예스`라고 말한다"를 모토로 내걸고 적극 영업에 나섰다. 심지어 대출 관련 서류가 미비해도 눈 감고 빌려줬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에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놓기만 하면 집값이 올라 더 좋은 조건으로 리파이낸싱을 하거나 집을 팔아 대출을 상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택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서 리파이낸싱도, 주택 판매도 어려워지자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은 벽에 부딪혔다.
연방주택감독청(OFHEO)가 발표하는 주택가격지수의 상승세는 크게 둔화됐고 실제 작년 3분기 이후 신축과 기존주택가격은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래프 참조)
게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상 기조도 들어서면서면서 이자 부담까지 높아지자 대출을 갚지 못하겠다는 파산선언이 늘기 시작한 것.
모기지뱅커협회(MBA)에 따르면 1년 만기 모기지 변동금리(ARM)는 작년 초 4%대 초반이었으나 꾸준히 올라 작년 11월 5%대로 올라섰고 올들어 1월과 2월 각각 5.17%, 5.34%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자 대출 자격이 안되는 데도 모기지 업체들의 경쟁에 수혜를 입어 어거지로 대출을 받은 이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미국 경제전문 잡지인 <비즈니스위크>는 서브프라임 대출업체들이 2005년말 갑작스럽게 `저금리`에서 `대출기준 완화`로 영업전략을 바꾸면서 작년 한해동안 부실이 쌓였고 올들어 수면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모기지 업체들이 대출 기준에 수천가지 예외조항을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출 규정 보다도 예외 규정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저금리` 정책을 썼을 때보다 수익성은 좋아졌지만 꿈 같은 세월은 얼마 가지 못했다. 무리한 대출이 연체율 급증을 불러오면서 부실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 채권을 매입한 2차 금융기관들이 액면가로 다시 되사줄 것을 요구하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점점 가중됐다.
부실에 놀란 서브프라임 업체들이 뒤늦게 대출 기준 강화에 나섰지만 작년에 이뤄진 대규모 부실대출은 이미 도처에서 골칫거리를 싸질러 놓고 난 다음이었다. 서브프라임 업계가 당분간 괴로움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