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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넥타이부대 다시 광장에…"군부독재보다 나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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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혁 기자I 2016.10.29 21:12:15

서울 청계광장 '朴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에 2만여 명 몰려
유모차, 넥타이, 할로윈 복장 시민들 한목소리로 퇴진 요구
"국민이 위임한 권력 개인에 넘겨..군부독재보다 더 나쁜 대통령"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최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시민촛불’ 집회에 시민 2만 여명이 29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모여 있다. (사진=유태환 기자)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최순실 게이트’에 분개한 수만 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끄는 부부와 두 손을 붙잡은 연인, 중·고·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시민들이 비선실세에 휘둘린 현 정권에 분노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벌였다.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9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집회 시작 30분 전부터 근처 광화문 5번 출구와 시청역 4번 출구에선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졌다. 시민들은 한 손엔 ‘이게 나라냐’, ‘박근혜 하야’란 푯말을, 다른 한 손엔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섰다.

자신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박모(34·여)씨는 “뉴스를 보다 화를 참지 못해 나오게 됐다”고 했다. 박씨는 “이번 주 월요일부터 텔레비전만 틀면 그 어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얘기가 나오는데 나중엔 분노를 넘어 실소가 나오더라”며 “대통령 하야는 물론이고 최순실 게이트를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했던 정치인들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박모(50)씨와 형모(47)씨 부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같은 국정농단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왔다”며 “아이도 왜 사람들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같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할로윈 복장을 한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머리에 호박 모자를 쓴 이모(23·여)씨는 “집회가 끝나고 할로윈 파티에 갈 계획이어서 할로윈 복장을 하고 오게 됐다”며 “대통령이 이제라도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준 이들도 현 정권을 비판했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뽑았다는 우모(69)씨는 “‘참 나쁜 대통령’ 등 박근혜 대통령의 언사에 많은 함의가 포함돼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론 완전 속을 꼴”이라며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한 모습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해진 왕년의 ‘투사’들도 다시 거리에 나섰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청 앞에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다는 허모(58)씨는 “87년 민주항쟁 때에는 젊은 대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시위를 이끌고 주도하고 시민들이 뒤를 따르는 분위기였다”며 “이제는 시민 전체가 집회의 주체가 되서인지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허씨의 친구인 김모씨는 “우리가 환갑이 다 돼 가는데 30년 전처럼 이렇게 또 거리에 나와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형식적 민주주의는 그때 이룩했을지 몰라도 내용 면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탄했다.

한모(52)씨는 “87년도 집회는 군부의 힘으로 권력을 찬탈해 정통성이 전혀 없는 정권에 항의하는 성격이고 현 집회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합법적인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일개 개인에게 넘겨준 것”며 “후자가 민주주의 안에서 벌어진 사태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이 마련한 무대엔 여러 유명정치인 등이 단상에 올라 현 정권을 규탄했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대통령이 하야 한다고 국정 공백 상태가 오겠냐. 국정은 지금 독일로 도망갔다”라고 비꼬았다.

노 의원은 “지금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수사 결과가 모두 우병우 수석에게 보고되고 우 수석은 다시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다”며 “박근혜 게이트 수사한 내용이 박근혜에게 보고되고 이게 또 최순실에게 공유되고 있는 현 상태가 말이 되느냐. 대통령 하야가 우선이다”고 주장했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이 발언하는 도중에도 ‘하야’라는 단어만 나오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로 답했다.

이날 오후 7시 20분경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광교를 지나 종각, 종로2가, 인사동으로 가는 코스로 행진을 벌였다. 수만 명의 인파가 서울 도심 한복판을 행진하며 “박 대통령 하야”를 연호했다. 현장에는 약 80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투입됐다. 시민과 경찰 간 별다른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투쟁본부는 애초 3000여 명 정도가 집결할 것으로 보고 경찰에 집회 신고를 했지만 이날 모인 인원은 주최 측 추산 2만 여명(경찰 추산 7000여 명)에 달했다.
29일 오후 6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 시민촛불’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모여들고 있다. (사진=고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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