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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강한 달러"를 거스르는 원화의 힘

하정민 기자I 2001.07.06 14:16:21
[edaily] 서울 외환시장이 엔화약세를 무시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연일 나타나고있다. 지난달초 119엔수준에서 바닥을 다진 달러/엔 환율은 시장참가자들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125엔을 상향돌파했다. "달러/엔 130엔" 전망이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원화환율의 상승세는 미미하다. 얼마전까지 "1달러=123엔=1300원"의 공식이 확고했으나 달러/엔 환율이 125엔대로 올라선 지금, 원화환율은 1300원에도 미치지못하고 있다. 2시 현재 달러화에 대해 원화와 엔화는 각각 1296원, 125.8엔 부근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원 환율이 10.3원도 아슬아슬하게 지켜내는 수준으로 지난해 11월이후 최저. 국내시장의 수급상황이 엔화약세를 압도하면서 환율이 서서히 하락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943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경상수지 흑자기조, 외국인직접투자자금 유입 가능성 등 하반기 달러 공급우위 전망이 압도적이다. ◇시장을 압도하는 물량..역외도 달러매수 안해 현재 환율상승을 저지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물량이다. 병풍처럼 시장을 첩첩으로 둘러싼 매물부담은 시장참가자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3~4월 환율급등때 대부분의 시장참가자들은 추가상승에 대비, 달러매수에 열중했다. 이때부터 보유한 달러가 환율의 추가상승이 실패하자 매물벽으로 돌변했을 가능성도 높다. 달러/엔 환율이 한 단계 상승했음에도 역외시장의 원화환율도 정체돼있다. 역외시장의 달러매수세 약화가 환율상승을 막는 새로운 재료로 부상하는 상황. 시중은행 한 딜러는 "달러공급 규모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기보다는 수요가 없는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석유소비가 줄어드는 여름을 맞아 정유사 원유수입량이 크게 줄면서 결제수요가 상당부분 감소했고 경기가 나빠 수입이 급감한 것도 달러수요가 줄어든 이유"라며 "역외세력마저 달러매수에 나서지않는데 누가 달러사자에 나서겠냐"고 말했다. ◇엔/원 환율 하락..왜 그렇게 신경쓰나? 시장관계자들은 엔/원 환율 하락추세와 외환시장 흐름은 별개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선물회사 한 딜러는 "엔/원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 추세를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의 펀더멘털이 일본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최근 엔과의 동조화현상이 줄어들면서 "원-엔 교차 거래"가 뚜렷이 증가, 엔/원 환율을 더욱 낮추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외국계은행 한 딜러도 "단순히 엔/원 환율이 하락했다는 것을 두고 수출경쟁력 약화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라고 말했다. 업종별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수출상품의 가격도 천차만별이어서 수치만 가지고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내 수출기조가 품질보다는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구조인데다 반도체, 철강 등을 비롯한 주력 수출품목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역협회의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수출업체들이 생각하는 적정 엔/원 환율은 10.7∼10.8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적정 수준이하의 엔/원 환율은 수출업체들로서는 일본과의 가격경쟁에서 불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반기 원화환율 평균은 100엔 당 1070.68원을 기록, 아직 "100엔=1070원" 이라는 등식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다. 엔화의 약세기조가 뚜렷하고, 예전보다 줄긴 했지만 달러/엔의 영향력도 여전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느긋한 당국.."환율안정은 내 손안에 있다(?)" 5일 한국은행은 콜금리를 0.25%포인트 낮췄다. 한은 측은 금리인하로 인한 물가불안 우려는 적다고 밝혔지만 물가 상승압력은 여전히 강하다. 때문에 물가불안이 가시화할 경우 정부가 보유물량을 풀어 다시 환율하락을 유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은이 경기부양에 주안점을 둬 금리인하를 선택했지만, 시선이 다시 물가로 돌려질 경우 다음 정책수단은 환율이 될 수도 있다. 환율상승이 물가상승을 자극하는 요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7월 금리인하가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한은의 마지못한(?) 선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은 환율상승을 적극적으로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 원화강세가 수출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정부가 원화강세를 반대할만큼 달러/원 환율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다. 한 시장관계자는 "올들어 원화환율이 꾸준히 1300원 위에서 자리했기 때문에 현 레벨이 낮아보일 수는 있으나 지난해 같은기간과 비교했을 때 결코 낮지 않다"며 "물가가 조금만 들썩여도 정부는 분명히 환율안정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는 환율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실탄을 보유하고 있다. 엔화약세로 인한 환율상승 압력을 잘 알고있는 정부는 달러/엔이 130엔대를 위협하고 환율이 그 움직임을 뒤쫓아갈 경우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란게 시장참가자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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