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미래에셋투신운용의 김경록 대표다. 김 대표는 애널리스트로서 채권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펀드운용을 총책임지는 자리까지 오른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매일매일 운용지침을 논의하고 신상품을 구상하면서 정기적으로 분석 리포트까지 쓰고 있다.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의 특성을 모두 구비한 셈이다. 미래에셋은 지난해말부터 회사채 전용펀드를 설정하기위해 광범위한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김 대표는 회사채 투자의 논리를 만들기 위해 국내외 투자이론을 면밀히 검토했다. 미래에셋의 회사채 펀드는 이론과 실무의 이상적인 결합으로 만들어진 히트 상품이다.
미래에셋은 4월초 채권투자 시스템과 관련해 장문의 분석 보고서를 내 화제를 모았다.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해진 것은 장기투자기관들 조차 “소총수”만 가지고 “전쟁”을 하기때문이라는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김 대표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운용자금을 분산해 맡겨놓으면 리스크 관리가 저절로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라며 “펀드매니저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적절히 견제해야 리스크 관리가 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은 회사채 전용펀드에 이어 “시스템 헤지펀드”를 개발했다. 기계적으로 매매 스케줄이 나오는 것이데 현물채권과 국채선물을 조합, 듀레이션을 미세조정하는 펀드다. 지금은 채권인덱스펀드를 개발중이다. 잇따라 신상품을 선보여 투신권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채권수익률이 결국 하락할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생각만큼 쉽게 돌아서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기회복도 더뎌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인상에서 풍기는 것과는 달리 태권도, 검도 등 격투기 운동을 좋아한다. 조용하고 치밀한 책사(애널리스트)의 성품과 채권시장이라는 무림에서 진검 승부를 마다않는 무사(펀드매니저)의 이중적인 이미지에 딱 어울린다.(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 참조)
-지금도 학교에 다니신다면서요.
▲81년 서강대 경제학과에 입학해서 졸업은 85년에 했습니다. 졸업 후 2년동안 군대에 다녀왔고 87년에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 입학해서 지금 14년째 학교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웃음)
-아직까지 석사논문을 마치지 못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대학원은 90년에 졸업했지만 박사과정을 좀 오래하는 바람에 아직 졸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첫직장인 장기신용은행은 90년 석사졸업과 동시에 입사했습니다.
-대학원도 남들보다 좀 길게 다니신 것 같습니다만(웃음)
▲아는 분들 중에 한 명이 행정고시를 준비한다고 하길래 그냥 따라서 저도 고시를 한답시고 휴학을 해서 공부했습니다. 한번 쳐보고 떨어져서 ‘운명이 아닌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 애널리스트에서 채권펀드매니저로
-장기신용은행 입사시절 얘기 좀 들려주시죠.
▲영등포지점의 주임으로 부임해서1년 정도 재직했습니다. 그다음 1년반 정도 경영연구원에 있다가 독립법인인 장은경제연구소로 발령받고 그 곳에서 6년동안 근무했구요. IMF가 터지고나서 연구소가 없어지면서 다시 장기신용은행으로 복귀했다가 합병 때문에 국민은행으로 갔다가 한국채권연구원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채권연구원을 만든 주체는.
▲현재 중앙대학교에 재직하시는 오규택 교수님입니다. 미래에셋에서 아직 채권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있을 때 그분께서 채권연구원을 만드신거죠. 박현주 회장과 고등학교 때 친구시기도 합니다. 채권연구원에는 저 혼자 간 것이 아니라 저를 포함해 딜러 4명이 먼저 입사했습니다. 장기신용은행에서 근무하던 팀이 옮긴 겁니다.
-채권연구원에서 미래에셋투신으로 옮기신 계기는 뭡니까.
▲미래에셋증권이 미래에셋투신운용을 만들면서 채권을 담당할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자산운용 쪽의 일부 매니저가 옮겨가니까 저도 실무쪽 일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박현주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면접시에 처음 만났는데 첫인상은 지금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유명한분인지도 몰랐습니다. 원래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이 유명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주식하는 사람은 물론 집사람까지도 이름을 알더군요. 들어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도 못했구요(웃음). 미래에셋은 전적으로 오규택 교수님 때문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오규택 교수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습니까
▲96년인가 장은경제연구소에서 자문교수로 계셨는데 그 때 만나뵙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제가 논문쓰는 것 때문에 오 교수께 직접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드리곤 했습니다. 그 인연이 이어진거죠.
논문이 맺어준 채권시장과의 인연
-채권과 처음 인연을 맺으신건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예전에 논문때문이라고 하신 기억이 납니다만.
▲그런 요인이 많습니다. 논문을 좀 고상하게 써볼까하는 생각에서였죠. 그런데 매형이 논문은 “먹고사는 것과 관련된 실용적인 주제로 써야한다” 고 충고를 하시더군요. 지금 제일기획의 마케팅담당이신데 전공이 사회학이라 그런지 사회흐름을 보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매형의 충고로 ‘실용적인 논문주제는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채권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그렇지만 그때 어디 채권과 관계된 데이터가 있습니까. 결국 94년 8월에 박사과정은 수료했지만 논문을 쓰지 못했어요. 회사채 인수시장 등 두 개정도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채권관련의 논문을 쓰지 못한 겁니다.
-그럼 석사학위 논문 주제는 무엇입니까.
▲화폐 자유주의에 관한 논문입니다. 하이예크에 관한 이야긴데 페이지 수는 많았지만 고상한 주제라서 그런지 역시 별로 남는 것은 없더군요. 하하
-이번 박사논문에 관한 얘기를 좀 해주시죠.
▲박사논문 주제는 채권과 관련해 쓰고 있습니다. 국채경매시장과 관련된 주제인데95년에 비해 데이터가 훨씬 많아져서 이번에는 고생을 덜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투신운용에서 김대표가 맡고 있는 정확한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monthly리포트에 담당팀장과 김대표의 이름이 동시에 기재돼있는 것도 이색적인데요. 리포트는 항시 공저로 작성하십니까?
▲그것을 공저라고 하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고…제가 참여하는 역할이 10%정도라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다른 일들이 바쁘지만 시장과의 교류를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이라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들이 대충 정리되면 50:50 정도로 본격 참여할 겁니다.
운용, 전략수립, 마케팅 관리
-최근 시장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리포트(채권운용시스템에 관한)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누구의 아이디어입니까?
▲아이디어 자체는 우리 김일구 팀장이 냈습니다. 처음에 안 쓰겠다고 했는데 하하. 수정하게 된 것은 고객과의 신뢰 때문입니다.
사실 현재 제가 그런 일에 시간을 내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입니다. 일단 운용본부를 총괄하다보니 컨택포인트도 많고 처리해야 할 일도 상당히 많은 편이죠. 매일 아침 제가 직접 의논하는 팀은 위험관리팀, 선물계약담당 이 두 부서입니다.
나머지 시장은 시장과 항상 접해있는 현물 트레이더들이 훨씬 정확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들에게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외 매주 월요일 회의를 할 때 중요한 결정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듀레이션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를 비롯한 문제들 말이죠. 제가 시장과 매일 붙어있으면 그날그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마케팅 쪽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시간을 내고 싶어도 불가능합니다. 시장과 붙어있는 사람보다 더 잘 분석할 자신도 없는데 매일매일 간섭한다는 것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상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대충 운용, 전략수립, 마케팅이라는 세 가지 부분에 집중하고 계신 것 같은데…가장 주력으로 삼는 업무는 어떤 것입니까.
▲아무래도 운용 쪽입니다. 운용 쪽을 관리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현재 공동대표 체체시죠? 두 분의 업무분장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까.
▲저는 채권 쪽을 담당하고 다른 대표는 관리를 담당합니다.
-미래에셋의 채권운용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순수하게 따져서 1조 가량됩니다. 다른 투신운용에 비하면 많은 액수는 아닙니다.
회사채 펀드, 신용리스크가 아닌 유동성 프리미엄에 대한 투자
-미래에셋의 경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회사채펀드를 처음 만들었고 운용전략이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래에셋의 가장 히트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채 펀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저희가 회사채 펀드를 만들었을 당시 금리는 큰 폭으로 떨어지고 회사채의 갭이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회사채펀드를 만든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신용등급 얘기를 하더군요. 그 때 B등급의 경우 주된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투자전략위원회에서 회의를 하면서 “우리는 신용등급에 베팅하지는 말자. A등급만 대상으로 한다. 신용등급 대신 유동성 프리미엄에 베팅하는 쪽으로 나가자”고 결론을 냈습니다. 국채의 경우 그 당시 과다한 유동성 프리미엄이 있는 상황이었죠. 회사채의 경우 회사가 유동성에 대해 약간만 부담해준다면 회사채 수익율이 괜찮게 나올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적정 갭을 110 bp로 잡고 올해 6월을 목표 갭이 50bp 정도는 줄어들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거죠. 국고채가 그대로 있더라도 갭이 이 정도 줄면 9%이상의 수익율은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갭이 무척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도나도 회사채펀드를 만든다고 난리들이었죠. 20일만에 50bp가 줄어들어서 저희도 놀랬습니다. 다만 그 이후 금리가 너무 많이 올라서 현재는 수익율이 조금 하락한 상태입니다.
-펀드 출범당시 4000억이 목표였는데…4000개를 다 채우셨나요?
▲네 거의 다 채웠습니다. 3700억 정도였죠. 목표수익율을 달성한 후 단기채권을 채워 넣었구요. 현재는 듀레이션을 1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기사 중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