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네덜란드)=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한국이 ‘주 4일제’ 도입을 고민하는 지금, 이미 전 국민 절반이 파트타임 노동자로 일하며 ‘워라벨 천국’으로 불리는 나라가 있다. 최근 5년간 꾸준히 세계행복지수 5위, 유럽연합(UN)이 ‘가장 행복한 아이들이 사는 나라’로 인정한 네덜란드다. 하지만 노동시장 유연성 모델 국가란 화려한 수식어 뒤 네덜란드 Z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깊은 불안에 빠져 있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유연 고용으로 노동시장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청년들의 결혼, 주거, 교육 등 미래 설계가 봉쇄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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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노동시장은 지난 1982년 사용자협회와 노동총연맹이 시간제 고용 확대를 위해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 이후 파트타임 근무가 극도로 세분화돼 있다. 네덜란드 통계청(CBS)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 시간별 노동자 비중은 △12시간 미만 9.5% △12~20시간 8% △20~28시간 14.8% △28~35시간 19.1% △35시간 이상(풀타임) 48.5%로 집계됐다. 노동가능인구(15세~75세) 중 전체 고용의 약 절반이 파트타임 근로자다. 파트타임 근로자에게는 근무시간 비례에 따른 사회보장권이 풀타임 근무자와 동일하게 부여된다.
문제는 쏠림이다. 전체 유연 근로자 중 15~25세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46%로 절반에 달한다. 특히 이들 중 80%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데 직업군별 선택권이 제한되면서 청소업, 배달업 등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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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코로나19는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는 “젊은 청년들이 정규직을 가진 비율이 나이 있는 사람들과 달리 계약상 이유로 해고되는 비율이 너무 많았다”며 “다시 취업해도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만큼 좋지 않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4년부터 도입된 ‘연령별 차등임금제’는 Z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주요한 원인이다. 네덜란드는 15~20세 청년층에게 연령별 ‘청년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21세 이상부터 성인 최저임금을 적용한다. 올해 하반기 기준 성인 최저임금은 14.4유로(한화 2만 3000원)로 동일 노동을 해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15세는 성인 임금의 30% 수준밖에 받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교육 수준에 차이에서 오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다. 네덜란드 유연 근로자의 30%는 초등교육 또는 직업교육(VMBO) 졸업자다. 반면 고소득 자영업자의 49%는 고등전문교육 또는 대학교육 이수자들이 대부분이다.
퀴네 교수는 “특히 학업과 병행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부모의 지원 여부에 따라 연봉, 직업군 등 삶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며 “교육 수준이 낮으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의 계약을 얻는 게 불가능하고 풀타임이 아예 없는 직업군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구조적 문제가 청년의 경제적 자립, 심리적 안정, 사회통합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저해하면서 이들의 불안정성과 좌절감을 키우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고용 불안정성 심화 추세는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해 15~25세 청년 취업률 77.7% 전년(77.9%)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지난 2014년 69.0%에서 꾸준히 상승했던 추세가 처음으로 꺾였다. 특히 교육도 취업도 하지 않는 니트(NEET) 청년은 2021년 9만 9000명에서 2024년 12만 6000명으로 2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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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겐스 연구원은 NEET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주거 문제를 꼽았다. 그는 “네덜란드 청년들도 부모가 중산층이 아니면 결코 집을 살 수 없다”며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 문제라고 생각하며 미뤄왔지만 결혼, 인생 목표나 모든 계획들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시기적으로 계속 미뤄지고 있고 삶의 원동력을 잃게 된다. 특히 역사적으로나 전 세계적으로나 직업, 소득에 대한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살게 되고 이는 정서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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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겐스 연구원은 “여성이나 아이가 있는 경우 돌봄 비용도 커서 혜택을 아무리 줘도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 없는 계층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소득 격차만 더 커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같은 생애 주기를 기준으로 보면 직업 안정성,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Z세대의 가치관은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낮은 임금과 반복되는 임시직의 굴레를 벗어나고 번아웃의 위험에 대처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만능 해법이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정부가 자유로운 일터 뒤에 숨은 청년층의 구조적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안전망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통역 도움=안지우 통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