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달러-엔 환율이 110선 아래를 헤매는 등 ‘엔고’가 가팔라지고 있지만 일본 외환당국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 만큼, 이를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7일 오전 9시16분 현재 일본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59% 내린 109.74~75에서 거래되고 있다. 1년 5개월 만의 최저치로 엔화 가치가 그만큼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날 공개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3월 회의록에 따르면 FOMC 의원들은 4월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FOMC 의원들의 비둘기적인 발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엔화 가치는 자연스럽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번 엔고는 미국의 상황보다 일본이 자처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아베 일본 총리는 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는 피해야 한다”라며 “외환 시장에 인위적인 개입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안화 약세 유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달러-엔은 110선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이제까지 대규모 돈풀기로 외환시장 개입을 해 온 일본이 시장에 손을 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키운 것이다.
갑작스러운 엔고에 일본 외환 당국은 당황하면서도 몸을 사리고 있다. 정부 수장인 총리의 발언을 무시하고 재무부나 일본은행(BOJ)에서 시장에 개입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긴장감을 가지고 주시할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말만 내놓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날 총리관저에서 만난 한 재무부 관계자 역시 ‘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상투적인 발언만 한 채, 추가 질문도 받지 않았다”며 “아베 총리의 발언 이후, 재무부가 구두 개입을 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다음 주 일본 이세시마섬에서 열리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도 일본 외환시장의 발목을 잡는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가는 정부의 환율 개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정부가 구두로 개입하는 것에도 불쾌함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달러-엔 환율 방어를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 G7 회의에서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엔저를 원동력으로 강세를 보여온 일본 증시는 7일까지 8거래일 연속 내림세를 타고 있다. 현재 닛케이225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08% 내린 1만5702.91에 거래 중이다. 1만6000선 아래로 떨어졌는데도 저가매수세는 유입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