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원자력발전소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신규 진입도 재검토하겠다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발표에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LNG발전소 운영사인 민자발전사를 바라보는 회사채 시장의 시선은 차분하다. 일부 민자발전사는 오히려 신용등급을 내리며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향후 전개될 에너지 정책의 막연한 수혜보다는 현재 공급 과잉 상황과 과중한 재무부담을 우선 고려해야 할 때라는 판단이다.
27일 크레딧업계에 따르면 NICE신용평가는 지난 23일 SK E&S(AA+)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비슷한 시기인 22일 포스코에너지와 포천파워의 신용등급을 각각 ‘AA’, ‘A’에서 ‘AA-’, ‘A-’로 1노치씩 하향 조정했다. 나래에너지서비스와 대림에너지의 신용등급도 각각 ‘A’, ‘BBB+’로 한계단씩 내렸다.
이번 신용등급·전망 하향 조정은 지난달 15일 미세먼지 감축 대책과 이달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 이후 이뤄진 것이어서 주목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원자력과 석탄을 지양하고 LNG 및 신재생에 방점이 쏠려 민자발전사가 수혜 업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민자발전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에 관심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신재생에너지가 주 발전원으로 자리 잡는 흐름에서 LNG발전의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이유다. 주식시장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관련주는 급등하고 원전·석탄화력 관련업체 주가는 떨어지며 이 같은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달리 신용평가시장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용평가업계에서는 민자발전사에 대한 정기 평가를 진행 중이어서 시기가 겹쳤을 뿐 정부 정책이 하향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는 반응이다. 그렇다고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발표가 당장 현금흐름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채 상환 능력 제고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기평의 경우 정부의 탈원전·석탄 정책을 통해 4월 기준 전략시장 참여 설비용량의 18.8%에 달하는 21.1GW 규모의 발전용량이 LNG나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될 것으로 봤다. 다만 실제 효과는 2021년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한기평 관계자는 “정부 정책의 방향성을 나쁘게 보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 구체화된 상황이 없고 현재 무거워진 재무부담을 당장 회복시키기에는 어렵다고 본 것”이라며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있겠지만 향후 구체적인 전력 수급 계획 등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민자발전 시장은 대규모 원전·석탄화력발전소 가동에 따른 낮은 이용률로 고전하고 있다. 이미 수년째 민자발전사 신용등급은 하향 추세를 이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포스코에너지는 발전선비가 지속 공급되는 상황에서 전력시장가격(SMP) 상승세 둔화에 따른 수익성 저하가 우려됐다. 포천파워 역시 수급 악화로 위축된 현금창출능력이 신용등급 하향 이유로 꼽혔다. 개별 기업의 문제가 발목 잡기도 했다. SK E&S는 이미 신용등급 하향 검토요인에 해당하는 상태에서 기대를 걸었던 자산 매각이 지연되자 등급 전망을 낮춘 경우다.
다만 그동안 민자발전사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많이 이뤄졌기 때문에 추가 강등이 계속되기보다는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때가 됐다는 게 신평업계 의견이다. 현재 재무부담이 되는 투자가 마무리되면 현금 흐름이 양호해지고 중장기로 볼 때는 에너지정책이 LNG 발전소에 수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 3사도 지난달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 발표 이후 정부의 정책 방향이 긍정적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일제히 낸 바 있다.
박세영 NICE신평 연구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용량 요금 인상 효과로 올해 1분기 대부분 발전사 실적이 개선되는 점은 긍적적 요소”라며 “당분간 수급 여건이 안좋아 발전소 가동을 통한 이익은 감소할 수 있지만 중장기 원전·석탄발전 감소에 따른 수급 여건 개선 등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