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국세청은 지난 4월 11일 국내외에 160척이 넘는 선박을 보유한 시도해운 권혁 회장의 역외 탈세 혐의를 잡고, 국세청 사상 최대 규모인 4100억원 상당의 세금을 추징했다.
또 국세청은 최근에는 1조원대 거부(巨富)인 카자흐스탄 구리왕 차용규씨에 대해서도 해외 탈세 혐의로 거액의 세금 추징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주로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점을 들어 한국 거주자가 아니고 과세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선박왕 권혁 회장은 4101억원의 세금을 부과받았지만, 세금을 내지 않은 채 조세심판원에 불복 청구를 준비 중이고, 차용규씨는 아예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 차용규·권혁씨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
차 씨나 권 회장 모두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고, 국내에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세금은 납부하지 않았다는 게 공통점이다. 실례로 차용규씨는 2005년에 카자흐스탄 최대 구리 채광, 제련업체인 카자묵스를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 뒤, 주식 명의를 조세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이듬해 주식을 팔아 1조원대 양도차익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차씨는 한국과 영국 어디에도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차씨는 또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세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국내에서 호텔과 백화점, 아파트 상가를 비롯해 코스닥기업을 통한 저축은행 인수 작업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도해운의 권 회장도 2006년 이후 주로 홍콩에 거주하면서 선박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국내에는 장기간 거주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세금 납부에 반발하고 있다.
◇ 차용규·권혁 "나는 비거주자"..국세청 "국내서 활동, 과세 당연"
차용규씨나 권혁 회장 모두 국세청의 조치에 대해 소득세법상 거주자 요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세금 부과에 반발하고 있다.
차씨는 "홍콩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한국에는 1년에 30일도 채 머무리 않는다는 점을 들어 비거주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혁 회장도 "180일 이상 한국에서 살지 않아 비거주자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씨나 권씨에게 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이들을 거주자로 볼 것인지에 달려 있다. 소득세법에는 '국내에 1년 이상 거소(居所)를 둔 개인을 거주자로 본다'는 규정이 있고, 시행령에는 '국내에 거소를 둔 기간이 2과세기간(2년)에 걸쳐 1년 이상인 경우 국내에 1년 이상 거소를 둔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국내에 1년 중 6개월 미만을 거주하면 국내 거주자로 간주하지 않아 세금을 안 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한 규정들이다.
차씨나 권씨가 해외에서 주로 생활한다는 점을 들어 한국 거주자가 아니고 과세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발하는 논리다.
국세청은 그러나 다른 시행령에 있는 '주소는 국내에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및 국내에 소재하는 자산의 유무 등 객관적 사실에 따라 판단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과세 대상이라고 보고 있다.
국세청은 차씨나 권씨 모두 홍콩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가족이 국내에 거주하거나 부동산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과세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차씨의 경우 부인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자주 머물고 있다는 점을 국세청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세청은 비롯 차명이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국내 부동산을 인수했지만, 이 역시 한국 거주자로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해왔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재정부 역외 탈세 논란 원천봉쇄..소득세법 개정안 착수
국세청은 이 같은 점을 이유로 세금 추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차씨나 권씨 모두 거주자 요건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점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논란을 원천 봉쇄하자는 차원에서 소득세법 개정안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는 거주자와 비거주자 요건을 재해석하자는 차원의 소득세법 개정안 방침을 정했지만, 현재로선 어떤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비거주자 요건인 6개월 미만을 낮추거나, 차명으로 소유한 재산을 통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고 확인될 경우 거주자로 인정하는 방식, 직계 가족의 국내 거주일을 통한 거주자 확인 등을 개정안에 담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안이 자칫 재외 국민들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부는 법 개정을 하되,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