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2월 6일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에서 출생한 안병섭 이등상사는 1949년 10월 18일 자원입대했다. 국군 제1사단에 배치돼 38도선에서 경계 임무 중 전쟁이 발발했다.
1951년 10월 29일 국군 제1사단 제12연대장은 임진강에서 중공군의 공격이 임박했음을 알고 두매리 고지 일대의 방어를 위해 제2대대 5중대를 배치했다. 두매리 고지는 임진강 북안 대덕산 동쪽에 있는 해발 140m의 요지였다. 적의 활동을 감시하기에 적합하고 향후 공세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지형이었다.
12월 28일 오후 4시 중공군 제188사단 제523연대는 박격포 지원 아래 두매리 고지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3일에 걸쳐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에도 불구하고 아군은 적의 압도적인 파상공세에 12월 30일 고지를 넘겨주고 물러나야 했다.
제12연대는 다음 해 1월 3일 고지 탈환을 위해 반격에 나섰지만 중공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고전했다. 사단장 박임항 준장은 예비대로 대기 중이던 제15연대에 탈환 임무를 부여했다.
제15연대 제9중대 제2소대 선임하사관으로 공격부대의 선두에 선 안병섭 이등상사는 4명의 특공조를 편성해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활약으로 제15연대는 기세를 몰아 공격에 나섰고, 두매리 고지에 이어 122고지, 148고지를 연이어 탈환할 수 있었다.
안병섭 이등상사는 이후에도 임진강 방어전과 지리산 지구 무장공비 토벌 작전, 연천군 왕징면 일대 전투에 투입돼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1월 28일 야간 수색 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1952년)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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