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선생은 미주지역의 독립운동 연합단체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이끈 주역들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과 외교활동으로 독립을 지원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독립운동을 위해 미주지역 한인사회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분위기에 따라 연합기관인 재미한족연합위원회가 출범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미국 본토에 집행부를 두고 하와이에 의사부를 두는 이원 체제로 운영했는데, 하와이 의사부의 영문서기로 김원용 선생을 선출했다. 또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지원하고 미주 한인단체와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전경무 선생을 충칭특파원으로 파송했다.
이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대미외교를 활성화하고 미국 본토에서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1944년 6월 워싱턴에 별도의 외교사무소를 설치했다. 여기에서 김원용·전경무 선생은 대외교섭과 외교활동을 주도했다.
특히 전경무 선생은 뉴욕 콜럼비아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한국은 왜 독립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며 한인들의 독립 열망을 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미국 우정국의 한국 우표 발행에 참여해 1944년 11월 2일 미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태극기가 들어간 한국 우표를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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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2월 하와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의 대대적인 모금을 위해 ‘독립금 수봉(收捧)위원회’를 조직했는데, 이때 민함나 선생은 의사부 위원으로 호놀룰루에서 독립자금 모금에 매진했다.
1945년 3월 10일 하와이 여성들은 국내 동포들을 위해 ‘연합부인구제회’를 조직했고, 여기에 민함나 선생이 회장에 심영신 선생이 부회장에 선출됐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해방 이후 국내에 대표단을 파견했고,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적인 입장에서 좌우 협력을 통해 자주적인 통일 독립국가를 수립하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원용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전경무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심영신 선생은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 민함나 선생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