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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자재·산업소재 국산화 이끈 정상영 명예회장 별세… 현대家 1세대 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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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기자I 2021.01.31 14:53:41

(종합)산업보국 정신으로 1958년 창업
도료·유리·실리콘 등 국산화 기여
전량 수입하던 실리콘 원료 개발도
현정은 회장과 '시숙의 난' 벌이기도

정상영 KCC 명예회장
[이데일리 박민·강경래 기자]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30일 향년 84세로 타계하면서 현대가(家) 창업 1세대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인은 현대그룹 창업자이자 한국 경제계의 거목인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평소 말투와 행동, 외모 등이 맏형과 비슷해 ‘리틀 정주영’으로도 불렸던 고인은 ‘산업보국’이 기업의 본질임을 강조하며 한국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건축·산업자재 국산화로 산업발전 기여

정 명예회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해외에 의존하던 도료(페인트), 유리, 실리콘 등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6년생으로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년간 경영 일선에서 몸담으며 가장 오래 현장을 지켜온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KCC 관계자는 “재작년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봤을 정도로 창립 이후 60년간 업(業)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며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경영자였다”고 회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후유증이 이어지던 1958년 8월 지금의 KCC 전신인 스레이트(석판)를 제조하는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당시 나이 22살이었다. 맏형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형의 뒷바라지를 마다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금강스레트공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 1973년에 사명을 ‘금강’으로 변경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듬해인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 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이후 2005년에 지금의 ‘KCC’로 사명을 바꿔달았다. 정 명예회장은 스레이트 제조업에서 출발해 △KCC(건자재·도료·실리콘) △KCC글라스(유리·인테리어) △KCC건설(건설) 등 삼각편대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고인은 기본에 충실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산업보국’이 기업의 본질임을 늘 강조해왔다. 특히 건자재, 산업소재 국산화를 위해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기술 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으며,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과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해 도료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또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현정은과 ‘시숙의 난’ 벌여

고인은 2003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망 후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시숙의 난’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취임을 강행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일자,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사모펀드와 뮤추얼펀드를 이용해 인수에 나섰다. 현 회장이 ‘국민주 1천만주’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며 맞대결을 펼친 끝에 결국 경영권 분쟁에서 패했다.

정 명예회장은 평소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회사에 자주 출근하며 직원들을 일일이 챙겼고, 항상 대기업의 올바른 경영방식을 강조했다. 인재육성을 위해 동국대, 울산대 등에 사재 수백억원을 기꺼이 쾌척하는 등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힘을 보탰다. 특히 ‘농구 명문’ 용산고 출신인 정 명예회장은 2001년 현대 걸리버스 프로농구단을 인수한 이후 다섯 차례나 프로농구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건축 내장재와 창호재, 도료 등을 만드는 KCC는 소비재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프로 구단 보유나 프로 리그 스폰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바로 고인의 ‘농구 사랑’이 KCC를 유명한 ‘농구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3남이 있다. KCC측은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최대한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라며 “장지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문과 조화를 정중하게 사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상영 명예회장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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