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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신라젠(215600)은 지난달에만 주가가 두 배 이상 급등했다. 10월말까지만 해도 6만7500원에 거래됐으나 지난달 21일 장중 15만2300원까지 올랐다. 셀트리온(068270), 셀트리온제약(068760), 셀트리온헬스케어(091990) 등 일명 ‘셀트리온 삼형제’는 최근 시가총액이 40조원을 육박해 50년 역사의 현대차(005380)(30조원 중반 수준)를 능가했다. 그러나 코스닥 랠리는 한 달 천하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신라젠은 9만원 초반선까지 하락했고 셀트리온도 2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코스닥 상승세에 불을 지폈던 정부 정책 기대감이 꺼진 영향이다.
◇ ‘오락가락’ 정부와 바이오 버블의 어설픈 동거
지난달 2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연기금이 코스닥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겠단 내용을 담은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가 10월말경 `코스닥시장에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 참여가 제고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던 만큼 이날 투자비중을 10%(9월말 현재 2%)까지 늘리겠다며 구체적 예시까지 들어 발표한 대책은 시장 기대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12월에 코스닥 활성화 대책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코스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였던 수급에 숨통이 트이는데다 그 주체가 국내 최대 큰손인 연기금이란 소식에 시장은 환호했다. 정부도 대책 발표후 코스닥지수가 급등하자 “과열은 아니다”며 수급에 긍정적 요인이 많다고 옹호했다. 실제 기관들은 지난달 1조원 가량을 코스닥에 투자했고 외국인도 4500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지난 달 14일 하루에만 기관 자금이 3800억원 가량 몰려 사상 최대 투자액을 기록했다. 개인투자자는 1조원 가량을 팔며 셀트리온, 신라젠 등을 차익실현했다.
그러나 지난달말부터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코스닥150ETF(상장지수펀드)를 중심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코스닥 상위에 분포된 바이오주 중심으로 순매수세가 대거 일어났다. 하지만 대장주인 셀트리온을 제외하곤 나머지 바이오주는 적자를 내고 있거나 실적이 부진했다. 그럼에도 바이오 업종간 순환매가 일어나며 급등세를 보이자 단기 버블 논란이 제기됐다. 박양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기금 투자 확대에 앞서 선취매하기 위해 기관이 많이 샀는데 주로 코스닥150ETF를 중심으로 사면서 시가총액 상위에 분포된 바이오쪽으로 자금이 몰렸다”고 말했다. 단기 버블을 의심하고 있던 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국민연금이었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연기금이 코스닥 종목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고 한 것은 완전 오보”라고 말했다. 2일 발표된 대책과 상반된 김 이사장의 발언에 정책 기대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연기금의 코스닥 목표치로 10%를 정한 바 없다”며 한 발 물러섰다. 코스닥 활성화 대책까지 내년 1월로 미뤄지자 코스닥지수가 지난 7일에만 2% 하락하며 일주일새 5.7% 급락했다. 이달 들어 기관은 2000억원 가량을 내다팔았다.
◇ 기관과 방향 바뀐 개미…은행 신탁 레버리지ETF도 부담
이 과정에서 랠리 고점에서 속칭 `상투`를 잡은 쪽은 역시 개인들이었다. 기관과 외국인보다 한 발 늦게 코스닥시장에 발을 들인 탓이다. 개인들은 이달 들어서만 3300억원을 코스닥에 투자했는데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대출로 조달된 것으로 보인다. 개인 신용융자 잔고는 7일 현재 10조1125억원인데 이중 절반 이상인 5조3459억원이 코스닥에 투자됐다. 전체 신용융자 잔고는 10월말 대비 15.1% 증가했는데 코스닥용 신용잔고가 19.6% 늘어났다. 특히 개인들이 이달 코스닥시장에서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은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 인터플렉스 등이었는데 셀트리온은 이달 들어 2.0% 하락하는데 그친 반면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인터플렉스는 각각 10.6%, 29.9%로 비교적 큰 폭으로 하락했다.
아울러 최근 한 달 간 코스닥레버리지ETF에 투자한 자금 역시 은행과 함께 개인이 다수였다. 지수 하락으로 두 배의 손실을 입은 셈. 그나마 은행들의 코스닥레버리지ETF 투자도 은행 신탁으로 유입된 개인 자금이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은행의 경우 개인 신탁자금이 코스닥시장에 투자된 영향”이라며 “PB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상품이 팔려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이 지난달 가장 많이 매수한 상위 10개 종목 중 5개가 코스닥레버리지ETF 또는 일반ETF였다. KODEX코스닥150레버리지ETF를 1940억원, TIGER·KODEX·KBSTAR코스닥150으로 1480억원 가량의 자금이 들어왔다. 개인투자자도 KODEX코스닥150레버러지ETF를 1610억원 순매수했다.
◇ `연기금 코스닥 투자 확대`는 유효한 정책 방향
다만 코스닥 대책이 무산된 것도 아니고 연기금 등 안정적 기관자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게 정부의 큰 정책 방향인 만큼 경기 회복에 기업 실적이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반등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이 아직은 우세하다. 홍 팀장은 “1년간의 시장 랠리와 머니무브 가능성, 경기 회복 등 가연성 재료가 가득한 곳에서 정부 정책이란 불꽃이 튄 것”이라며 “코스닥 대책이 기대 이상이거나 대규모 수주 소식 등 발화점이 또 다시 나오면 언제든 불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도 (정책 발표 과정이) 서툴렀고 시장 기대가 과도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선 확실한 명분을 줄 필요가 있단 지적도 나온다. 단순히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연기금 투자를 늘려야 한다면 거부감이 크기 때문. ‘일자리 창출이나 설비투자 증가율이 높은 기업, 배당이 크게 증가하는 중소형주를 추출한 ETF에 투자해 연기금 투자가 노후 자금 증대 뿐 아니라 경제 성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성이다. 실제 일본에선 일본은행(BOJ)이 ETF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를 실시할 때 설비투자와 인적자본 투자 상위 기업을 뽑은 ‘S&P JPX 캐팩스&휴먼캐피탈(CAPEX&Human Capotal) 인덱스’를 만들기도 했다. 이 지수는 토픽스 지수보다 장기수익률이 1.5% 이상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코스닥시장은) 15년간 움직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불신이 많이 낀 시장이지만 이를 제대로 된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엔 변함이 없다”며 “연기금이든 개인이든 장기적으로 투자해 배당도 받고 향후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소득 개선 뿐 아니라 미래 노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