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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아편전쟁 때 영국의 파머스턴 외무장관이 한 말로 유명하다.
최근 개봉한 ‘군함도’는 스크린 2000여개 독점, 개봉 첫날 97만명 관람 등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드 문제로 한한령이나 롯데마트 영업정지 등 불편함 심기를 드러냈던 중국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항일 대작’이라고 극찬하며 다섯 꼭지에까지 걸쳐서 심층 보도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긴밀히 공조하고 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중립이었던 미국이 참전하여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었던 배경이 된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트럼프 정부의 금융 및 무역 제재에 반발하여 의기투합하는 분위기이다. 중국과 구 소련이 국경 문제 및 공산주의 주도권으로, 한때 핵전쟁 직전까지 충돌할 뻔했던 역사적인 기억이 무색할 정도이다. 그 이전에는 구 소련의 지원으로 중국에 ‘중화소비에트공화국’ (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등 밀월 관계였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또한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중국과 러시아가 최초로 접촉하였던 17세기에 국경을 획정하기 위한 네르친스크 조약 이래 일리 조약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밀린 불평등 조약으로 중국의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이제, 파머스턴이 한 말로 돌아가서, 후반부 ‘영원한 국가이익’을 논의해 보자. 선진국의 특징 중 하나는 국익(국가이익)이 달려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토론 등 절차적 타당성을 최대한 확보하되, 첨예한 이슈는 경우에 따라 은밀하게 진행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정당성을 확보한 결론에 대해 승복함은 물론이다. 언론도 국익을 위해서는 특종 확보에 대한 유혹이나 집착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최근 북핵 사태로 유래없는 긴장이 극동아시아에 조성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대응 및 반응 또한 각양각색이다.
쿼바디스, 대한민국? 구체적인 논의는 언론지상에 많이 보도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보다 원론적인 토론 문화와 승복 전통을 제언해 본다.
첫째,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전통이었던 토론 문화를 부활,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예컨대, 성리학은 우주 질서와 인간 심성을 ‘理’와 ‘氣’ 두 가지로 분류하는 이기론을 기반으로 한다. 어느 것을 중시하냐에 따라 주리론과 주기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자는 선구자 이언적에 이어 이황이 완성하고 유성룡 등에 의해 계승된다. 주기론은 선구자 서경덕에 이어 이이가 완성하고 조헌 등에 의해 계승된다. 건전한 토론과 경우에 따라서는 치열한 논쟁의 결과, 성리학의 원조, 남송의 주자보다 뛰어나다는 평까지 전해지고 있다.
둘째, 토론은 치열하게 전개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는 전통이 절실히 필요하다. 거꾸로 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토론 결과가 잘못 도출되었거나 또는 패자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일 것이다. 전자는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착되면 더 이상 문제될 수 없기에, 여기에서는 제외하자. 후자인 정당한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지 않을 때에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되고, 특히 국가적인 이슈일 경우 국익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쿼바디스, 대한민국?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선진국도 있고 후진국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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