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현금 사정이 좋은 일본 기업들은 부진한, 그리고 앞으로 성장 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우려되는 내수 시장을 상쇄할 시장을 찾기 위해 분주히 밖으로 나가고 있다.
지난 1일에도 굵직한 일본 기업의 해외 인수합병(M&A)이 발표됐다. 제약사 시오노기(Shionogi & Co.; 鹽野義)는 미국 애틀란타 소재 사이얼 파마(Sciele Pharma)를 11억달러의 현금을 주고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또 영국 체인지 캐피탈 파트너스는 패션 브랜드 질 샌더를 일본 온워드 홀딩스에 1억6700만 파운드(2억4500만달러)에 넘기기로 했다.
◇ 日 제약사, 해외 기업인수 줄이어
시오노기의 사이얼 파마 인수는 지난 9개월 동안 일본의 해외 기업 인수 가운데 네 번째로 큰 규모.
자체 해와 판매망을 갖고 있지 않은 시오노기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라이센싱 계약을 맺고 미국 시장에 콜레스테롤 저하제 `크레스토`를 판매한 바 있으며, 이번 인수는 미국 내 마케팅 채널 확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일본 제약업체들의 해외 기업 M&A는 숨가쁘게 이루지고 있다.
일본 최대 제약업체 다케타 파마세티컬은 지난 4월 미국 바이오 테크놀러지 업체 밀레니엄 파마세티컬을 88억달러에 인수했다. 6월엔 다이이치 산교는 인도 최대 제약사 란박시 래버래토리즈에 46억달러를 투자, 경영권을 확보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에자이(Eisai)는 지난 해 12월 암 치료제로 유명한 미국 MGI 파마를 39억달러에 인수했다.
◇ 日 올해 해외 M&A, 지난해 배 넘어서
제약 외 일본 내 다른 업계에서도 해외 M&A를 통한 시장 확대 및 몸집 불리기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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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로이터스에 따르면 올들어 현재까지 일본 기업들의 해외 M&A 규모는 433억달러로 지난해 전체의 두 배를 넘어섰다. 특히 미국 기업들이 타깃이 되고 있으며, 인도 기업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금 등 재무사정이 견고한 일본 기업들이 해외 M&A를 통해 해외 시장을 뚫어 부진한 내수 사정을 상쇄해 보려 애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해외 판매망이 없어 경쟁사들에게 뒤쳐지고 핵심 고객을 잡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에 매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80년대 붐 상기..과거 실패사례 `타산지석`
그러나 일본 기업들의 이런 해외 기업 사들이기 붐에 대해 지난 1980년대 말을 상기하며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당시 부동산과 증시 붐을 등에 없고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과 부동산 사냥에 매달렸다.
일본 대표 기업 소니가 영화사 컬럼비아 픽처스를 손에 넣었고, 록펠러 센터도 일본 대기업에 팔려 나갔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이렇게 미국을 사들이는 일본인들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소설 `떠오르는 태양`을 썼고, 이것이 영화화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붐이 꺼지자 인수에 따른 부담이 막대했고, 일부는 도산하기도 했다.
기술주 붐이 일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도 일본 기업들은 해외 기업 인수에 열을 올렸다. NTT도코모가 지난 2001년 미국 AT&T 와이어리스 지분 인수에 98억달러를 지불했던 것이 한 예. 하지만 NTT도코모는 `단물`은 거의 얻지 못한 채 투자에 따른 대규모 자산상각에 나서야만 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최근 일본 기업들이 980년대 버블의 교훈을 무시하고 해외 M&A에 나서고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관련기사 ☞ 日 해외자산 인수 `열중`..80년대 버블 경고
WSJ은 또 일본 기업들이 인수한 해외 기업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 문화는 의사결정시 내부 동의를 이루는 것을 중요시하는 편. 따라서 인수 기업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경영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츠시타 일렉트릭 인더스트리얼이 미 할리우드 스튜디오 MCA 경영권을 갖고 있다가 결국 1995년 80%를 팔아버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그러나 일본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케다 파마세티컬의 경우 밀레니엄 파마세티컬 1000명의 직원들에게 최소 1년간 남아있을 경우 보상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하세가와 야스치카 다케다 사장은 "이 방법은 초기엔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시오노기의 경우에도 사이엘의 경영진을 남겨두는 방식을 택해 문화 충돌 등에 의한 실패를 방지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