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SK텔레콤 가입자들이 SK텔레콤을 상대로 개인정보 가명 처리 정지를 요구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입법 공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1심 판결이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민간의 빅데이터 사업은 물론, 공공데이터 사업까지 막힐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만든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제정 당시부터 예상됐던 일이라며, 이제라도 공론화해 입법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원, 가명정보 규정 제한적으로 해석…입법 당시부터 논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부 민사부는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처리자에 대해 자신의 개인정보 처리의 정지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 제1항에 근거해 개인이 가명정지 처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지난 19일 판결했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 2항, 7항에 따르면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의 처리정지(제37조)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가명정보란 그 자체로 개인임을 식별할 수 없는 정보로 생성과 결합 시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어찌 된 일일까. 법원이 가명정보에 대한 특례규정(제28조)를 제한적으로 해석한 이유에서다. 데이터3법 입법에 참여한 교수는 “당시에도 가명정보 규정(제28조)이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처리하는 근거를 담은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규정(제15조)과 어찌 되는가가 이슈였는데, 4차산업혁명위원회서 사회적 대타협을 한 상황이어서 문제를 제기하면 법 통과가 안 될 것 같아 지나갔다”면서 “판결대로라면 28조는 가명 처리된 이후의 가명정보만을 다루는 것으로 소극적으로 해석된다. 입법 공백이 확인된 셈”이라고 했다. 28조와 15조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다 보니, 비식별화 조치(가명처리)까지 개인이 처리 중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빅데이터 활용 통계 사업, 공공 데이터 사업도 흔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명정보’라는 카테고리를 넣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 산업 활성화를 꾀했던 시도가 데이터 활용 제한이라는 걸림돌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누구든 기업에 가명처리 중지를 요구하면 정부나 학교, 기업 등은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통계의 불확실성은 물론이고, 개인임을 알 수 없는 가명 처리된 정보를 이용하는 공공 데이터 사업도 흔들리긴 마찬가지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 회장(가천대 교수)은 “입법 과정에서부터 제기했던 이슈로서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데이터 3법의 개정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합법처리근거로서의 가명처리 및 가명정보 처리 규정에 대한 추가적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