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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CBDC)를 발행하더라도 현금과 종이 지폐에 대한 수요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소외계층을 위해서라도 CBDC와 현금이 공존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디지털 경제로 나아갈수록 종이 지폐, 특히 고액권 사용이나 유통 가치는 떨어지는 반면 보유나 저장에 대한 수요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5만원권이 대표적이다. 5만원권이 탈세나 단순 현금 보유 수요 등에 의해 가정 내 금고 속에 계속해서 쌓일 경우 자산 은닉 등 지하경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CBDC를 도입할 경우 5만원권 발행 규모와 환수 방안 등에 대한 다각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잇돈 5만원권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이에 맞춰 발행할 경우 일부에선 5만원권을 사용하겠지만 상당 부분이 가정 내 금고 속으로 들어가 그 자체로 지하경제가 커질 수 있다. 이 경우 5만원권 수요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지폐를 찍어내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디지털화를 최소 7년간 앞당겼다는 맥킨지 보고서에 비춰 볼 때 이는 CBDC를 발행하지 않은 지금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돈의 유통속도를 보여주는 통화승수(M2/본원통화)는 9월 14.5배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 현금 보유 성향이 강해진 탓에 화폐 발행액은 작년 21조9000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0조3000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올해는 10월까지 16조6000억원 발행해 발행액이 줄어들지 않았다. 주로 5만원권 발행이 많았다. 5만원권은 2019년 10조7000억원, 작년 19조1000억원, 올해 16조3000억원으로 전체 발행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렇게 발행을 늘렸는 데도 5만원권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권(지폐)의 환수율은 올해 10월까지 누적으로 106.0%에 달하는 반면 5만원권만은 18.4%로 낮았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만원권 지폐가 지하경제 차원에선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고 디지털 경제에선 더 심해질 텐데 그냥 쌓아두게 놔둘 것이냐에 대해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BDC 도입 시 5만원권의 환수 여부, 환수 정도 등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아직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은 없지만 고민해 볼 문제”라며 “CBDC를 발행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논의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CBDC 모의실험을 내년 6월까지 마무리한 뒤 하반기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CBDC 발행 관련 본격적인 공론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