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구로구 구로역 광장에 마련된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자신의 검사 차례를 기다리던 중국 국적 60대 심모씨는 불만을 터뜨렸다. 심씨는 “하려면 다 같이 해야 공정하지, 한국 사람이 걸리면 가만히 있으면서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며 “이건 아니다”라고 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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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고위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도록 권고했지만, 반발이 여전히 거세다. 외국인 코로나 검사가 의무인 지역으로 오가는 이들은 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외국인이라 차별받고 있다”며 방역당국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했다.
21일 임시 선별검사소가 있는 서울 구로역 광장 앞은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온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 의무 행정명령을 내렸지만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틀 만인 19일 철회했다.
그러나 아직 경기도와 광주시·대구시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검사 의무 조치가 이어지면서 이날 주말을 이용해 검사를 받고자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몰려든 것이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은 검사 조치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검사 의무 지역으로 출퇴근하거나, 주거지가 딱히 없이 일이 있는 지역으로 옮겨 다니며 지내는 이들은 검사를 받고 있다.
이날 새벽 6시부터 나눠주기 시작한 코로나19 검사 예약표는 금세 동났다. 꼭두새벽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린 사람들 때문이다. 아침 일찍부터 졸린 눈을 비비고 나왔지만, 길게 늘어선 인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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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돈을 벌러 한국에 왔다는 30대 정모씨도 “차별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씨는 “왜 외국 사람은 검사 안 받으면 일할 수 없다면서 강제로 시키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중국인 이모(54)씨 역시 “서울은 권고 조치됐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서울과 경기도 왔다갔다 하면서 일하기 때문에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달리안(31)씨는 “모두가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려면 검사를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외국인 같은 일부 특정 사람만 검사를 받게 해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20대 레일라씨도 “무료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은 좋지만, 누구나 감염될 수 있는 이 바이러스가 외국인한테만 퍼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힘줘 말했다.
◇‘인권 침해’ 비판 잇따라…검사 강요·권고 실효성 없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외국인 근로자한테만 검사를 강요·권고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자가 만료돼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외국인 근로자들은 검사를 받지 않고 숨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도의 한 외국인 근로자 밀집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 A(27)씨는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비자 만료 여부 확인 안 할 테니 검사받으라’고 안내하지만 실제로 어느 불법체류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검사를 받겠나”며 “정부가 여기까지 생각을 하고 외국인 검사 의무 행정명령을 내렸는지 아니면 주먹구구식으로 했는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사회·노동계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검사 의무 행정명령은 중대한 외국인 차별행위이자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서울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이번 행정명령은 헌법상 인간으로서의 존엄, 평등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방역당국의 이 같은 행정 조치가 인권침해에 해당하는지 등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지난 19일 “최근 이주민들이 ‘혐오와 인종차별’이라며 인권위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침해 여부를 신속히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