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은 최근 제약사나 도매상에 올해 공급할 의약품의 가격을 지난해보다 15% 낮게 책정하라고 요구했다. 상당수 대학병원은 전년대비 7~10% 저렴한 가격에 약품을 공급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형실거래가제도’는 의료기관이 제약사나 도매상으로부터 의약품을 보험상한가보다 싸게 구매하면 차액의 70%를 인센티브로 돌려받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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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제약사 한 관계자는 “서울의 한 대형병원은 무조건 다른 병원에서 구매하는 가격보다 낮게 공급하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제약사들은 병원의 가격 인하 압박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당수 의약품이 대체 약물이 있어 가격 인하 요구를 거부하면 병원 측이 처방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해 하기 때문에 이에 맞서 대응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대체 의약품이 없는 오리지널 제품도 저가 공급을 거절하면 해당 제약사가 보유한 다른 제품의 구매를 줄일 수 있다고 압박해 병원의 횡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장형실거래가의 인센티브 지급 대상이 아닌 저가 의약품이나 마약류의약품에 대해서도 병원이 “환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명분으로 저가공급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벌써부터 제약사들의 의약품 납품 거부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약업체들은 복지부가 시장형실거래가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재시행을 강행, 시장 교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당초 복지부는 이 제도의 추가 유예를 적극 검토했지만 최근 재시행 이후 협의체를 통해 보완책을 강구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병원이 정부 정책과 거래관계상 갑의 위치를 교묘히 활용해 주머니를 채우려 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병원의 저가 공급 요구는 공정거래법상 위법 소지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병원이 일방적으로 공급 가격을 낮춰서 요구하는 것은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견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거래 당사자 간의 계약을 개입할 권한은 없다”면서 “시장형실거래가 재시행 전에 충분한 모니터링을 거쳐 의약품 공급 차질이 우려될 정도의 부적절한 거래가 포착되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