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겨우 이혼이야?"…여섯 왕비, 한맺힌 고음 대결

장병호 기자I 2023.03.26 19:30:40

[웨스트엔드 화제작 '식스 더 뮤지컬' 국내 상륙]
헨리 8세 왕비 6명, 팝 그룹으로 설정
굴곡진 삶 살다간 여인들의 삶 노래
3주간 내한 후 31일부터 한국어 공연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여기, 고난 속에 생을 마친 안타까운 왕비들이 있다. 영국 튜더 왕조를 대표하는 국왕 헨리 8세(1491~1547)의 여섯 아내들이다. 이들의 운명을 각각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이렇다. ‘이혼, 참수, 사망, 또 이혼, 참수, 그리고 생존’. 그야말로 굴곡진 삶을 살다간 안타까운 영혼들이 2023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부활했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내한공연의 한 장면. (사진=Manuel Harlan, 아이엠컬처)
머리가 지끈거리는 역사 이야기는 아니다. 막이 오르자마자 왕비들이 쏟아내는 고음 대결이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든다. 공연 시작과 동시에 관객의 환호로 가득한 무대는 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티움에서 개막한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이하 ‘식스’) 내한공연 현장. 영국 웨스트엔드 화제작의 아시아 초연 무대다.

헨리 8세는 종교 개혁 단행 등으로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재위 기간 6번의 결혼을 거듭한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드라마 ‘튜더스’, 영화 ‘천일의 스캔들’ 등 창작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스’는 헨리 8세에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헨리 8세에 가려져 있었던 여섯 왕비(아라곤·불린·시모어·클레페·하워드·파)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역사적 소재를 참신한 설정으로 다룬 점이 눈길을 끈다. 여섯 왕비를 가상의 팝 그룹으로 설정한 점부터 그렇다. 여섯 왕비는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삶을 노래하기로 한다. 헨리 8세로부터 가장 고통 받았던 한 사람이 그룹의 리드보컬이 되기로 한다. “넌 이혼했지, 난 목이 잘렸어” 등 팽팽한 ‘디스전’(랩 배틀 등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이 웃음을 선사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아델, 에이브릴 라빈, 니키 미나즈 등 유명 팝 가수들을 각 캐릭터와 음악으로 녹여낸 점도 색다른 재미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내한공연의 한 장면. (사진=Manuel Harlan, 아이엠컬처)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을 만든 창작자들이다. 1994년생 동갑내기로 케임브리지 대학 동문인 토비 말로우, 루시 모스가 대학생 때 만든 첫 뮤지컬이다. 201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였다. 오프-웨스트엔드, 영국 투어를 거쳐 2019년 웨스트엔드에 정식 데뷔했고, 2020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지난해 제75회 토니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뮤지컬 의상 디자인상을 받았다.

젊은 창작자들의 역사에 대한 과감한 해석은 국내 공연계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역사 소재 뮤지컬이 많지만 시대적 감성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식스’ 내한공연에 대한 한국 관객의 열렬한 반응을 보면 아직도 한국 창작진은 전근대적 발상에 머물러 있지만 관객은 훨씬 앞서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주체적인 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선 전형적인 여성 서사 작품이다. 그러나 콘서트 형식을 빌려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참신하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쇼 뮤지컬의 형태로 풀어내 통쾌함을 전하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라며 “엔딩 또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 과정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어서 신선하다”라고 평했다.

26일까지 3주간의 내한공연을 마친 ‘식스’는 오는 31일부터 6월 25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한국어 공연을 이어간다. 배우 손승연, 이아름솔(아라곤 역), 김지우, 배수정(불린 역), 박혜나, 박가람(시모어 역), 김지선, 최현선(클레페 역), 김려원, 솔지(하워드 역), 유주혜, 홍지희(파 역) 등이 출연한다. 원 교수는 “블랙핑크 등 한국 K팝 그룹의 동작, 그리고 한국적인 위트가 들어간다면 한국어 공연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 한국어 공연 캐스팅. (사진=아이엠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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