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2월12일 테나리스가 하이드릴을 주당 97달러에 사들이겠다고 밝히면서 주가는 95달러24센트까지 올랐다. 하이드릴 주식을 90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의 가격은 단 하루만에 50센트에서 5달러30센트로 960% 치솟았다. 한 마디로 `대박`이었다.
올해 미국 인수합병(M&A)이 미국 주식시장만 거침없이 끌어올린 것이 아니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뜨거운 M&A 열기 뒤에서 내부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스왑, 옵션 등 다양해진 투자기법을 이용한 내부거래가 성행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M&A 열풍..기회 많아졌다
M&A와 바이아웃 등은 주식시장에서 호재다. 딜이 발표되면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기 때문. 최근 M&A 열풍은 내부거래의 기회를 양산했다.
실제로 최근 M&A가 외부에 공개되기 이전 주식, 옵션, 크레딧디폴트스왑 가격이 꾸준히 오른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전미증권업협회(NASD)의 한 관계자는 "바이아웃이나 M&A 붐이 일면 내부 거래의 기회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올해 1월1일부터 4월20일까지 45건의 내부자거래를 적발,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통보했다. 작년 한해동안 고발건수 111건의 40%를 이미 넘긴 것이다.(관련기사☞美 내부자거래 심각..올들어 45건)
올들어 지난 13일까지 발표된 글로벌 M&A 규모는 2조8000억달러.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 전체 규모 3조5000억달러도 넘어설 전망이다.
◇스왑·옵션 활용 내부거래 늘어
1980년대에도 바이아웃 붐이 있었다. 당시 월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반 보스키의 내부 거래는 유명하다.
그러나 80년대에는 지금처럼 금융 기법이 다양하지 않았다. 눈부시게 발달한 금융 기법은 21세기 전례없이 다양한 내부거래 기회를 양산하고 있다.
특히 옵션 가격은 실제 주식 가격보다 훨씬 싸기 때문에 정보만 분명하다면 적은 자본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어 내부 거래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미 검찰은 아자즈 라힘 파이살뱅크 투자은행 부문 헤드를 옵션 내부거래 혐의로 기소했다.
라힘은 텍사스주 최대 전력업체인 TXU가 사모펀드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KR)와 TPG에 인수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대규모 옵션을 매수, 단 하루만에 500만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았다.
◇"탐욕은 선이다"..골드만삭스 등도 연루
그러나 한 건의 M&A나 바이아웃을 진행하는데 많은 투자은행, 법률회사 등이 참여하기 때문에 비밀 유지는 쉽지 않다. 실제 TXU의 경우 7개의 투자은행과 12개의 법률회사가 딜에 참여했다.
존 커피 콜럼비아 대학 법학교수는 "얼마나 적은 사람들이 알아야 비밀이 지켜질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월가에서 10명 이상의 사람이 알게 될 경우 그 비밀은 지켜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6년 4월 이후 SEC는 12명 이상의 투자은행 최고경영자(CEO)와 뱅커와 애널리스트 등을 내부자 거래 혐의로 기소했다. 이는 1990년대 전체 기소 규모보다 많은 수준. 여기에는 골드만삭스, 모간스탠리, 메릴린치, 크레딧스위스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의 뱅커들이 포함돼 있다.
SEC의 한 관계자는 "가장 염려되는 것은 월가 대형투자은행들도 내부거래에 연루돼 있다는 것"이라며 "내부거래가 지나치게 성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1987년 영화화된 `월 스트리트`의 캐치프레이즈 `탐욕은 선이다(Greed is Good)`가 히트를 친지 20년이 지난 지금 탐욕이 다시 월가를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