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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이 장관은 이날 본회의에서 ‘북한 비핵화와 인도태평양지역 안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한일 간에는 여러 현안이 남았지만, 양국 공동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현안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지혜를 모아 나가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장관의 발언은 한미일 국방협력과는 별도로 한일간 진지한 국방협력을 모색해보겠다는 대화 제의로 여겨진다. 앞서 이 장관은 전날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기시 노부오 일본 방위상과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 후, 미사일경보훈련과 탄도미사일 탐지·추적훈련을 정례화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풀어사이드’(약식회담) 형식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미일 3각 협력과는 별도로, 2018년 초계기 레이저 조사 사건 이후 이어진 양국간 앙금이 협력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 장관의 한일 국방 협력 제안은 양국간의 국방협력 관계를 정상으로 되돌리자는 취지로 보인다. 한일이 맺고 있는 유일한 군사협정인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는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갈등을 맺으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양측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한미와 일본이 탐지한 북한 미사일에 대해 제원 판단이 다른 상황도 종종 노출됐다.
예를 들어 북한의 지난달 26일 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경우 한국 군 당국은 고도 540km에 비행거리 약 360km라고 밝혔다. 반면 일본은 최고고도 550km, 사거리는 약 300km라고 최초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 5일 발사한 미사일 숫자에 대해서는 “최소 6발”이라고 밝혀온 일본 정부가 닷새만에 한국 분석과 같은 8발이라고 수정하기도 했다. 2발은 고도가 낮아 지평선·수평선 너머인 일본이 미처 탐지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장관의 발언은 이같은 엇박자를 줄이고 북한 핵·미사일 억지력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북한 비핵화 목표와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는 확고하게 유지될 것”이라며 “이 모든 계획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를 위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 억제를 위한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하고 한국군의 대응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킬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이 장관은 아울러 “대한민국의 정치·경제·문화적 위상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함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이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단순한 위협수준을 벗어나고 있다”며 “이는 한반도와 인태 지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한반도와 동북아 중심 외교를 넘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역할을 수행하겠다며 △아세안과의 안보협력 △비전통 안보 분야를 아우르는 협대 확대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의 원칙에 기반해 인태 지역에서 가동 중인 다양한 안보협의체와의 협력 등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인태 지역 안보협의체와 관련해. “한-아세안 협력, 쿼드(Quad) 등 소·다자 협의체의 궁극적인 목적은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인태 지역에서 충실하게 구현되는 것”이라며 “특정국을 배제하기보다는 최대 다수의 국가가 최대의 안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아세안 협력, 쿼드와의 협력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방침이 중국 배제·견제가 아니라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언급도 했다. 그는 “어떤 침략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조기에 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북한도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조속히 준단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