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머큐리에게는 동성 애인뿐 아니라 메리 오스틴이라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머큐리와 오스틴의 인연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를 통해서도 소개됐다.
두 사람은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의 소개로 1969년에 처음 만났다. 당시 24살과 19살이었던 머큐리와 오스틴은 곧 연인이 되어 약 6년 동안 함께 살았다. 이 때는 머큐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각하기 전이었다. 심지어 1973년 크리스마스에 머큐리는 오스틴에게 청혼하기도 했다. 오스틴은 곧바로 수락했지만, 머큐리는 이후 결혼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1976년 어느날 머큐리는 오스틴에게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다. 어느정도 짐작을 하고 있던 오스틴은 “당신은 양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 같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큐리와 오스틴의 육체적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오스틴이 머큐리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했지만 머큐리는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나눌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지냈다. 보통 친구 이상으로 가까운 친구였다. 머큐리에게 동성 애인이 생겼어도 오스틴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머큐리가 주최하는 파티에선 그의 양옆에 늘 오스틴과 동성 애인이 각각 앉았다고 전해진다.
머큐리는 1985년 한 인터뷰에서 “내 애인들은 모두 묻는다. 왜 자신들이 메리를 대체할 수 없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가진 유일한 친구는 메리이고, 난 다른 누구도 원치 않는다. 나에게 그녀는 관습법상 아내와도 같다”고 말했다.
|
그는 1991년 사망 직전 유언을 통해 자신이 생전 마지막까지 살았던 영국 런던의 저택 ‘가든 로지’를 오스틴에게 증여했다. 에드워드 양식으로 지어진 이 저택은 28개의 방과 대형 정원을 갖추고 있다. 현재 가격은 2000만 파운드(약 294억원)에 달한다. 오스틴은 아직도 이 집에 살고 있다. 그녀가 직접 골라준 ‘루이 15세’ 가구와 머큐리가 “Bohemian Rhapsody”를 비롯한 수많은 곡을 작곡할 때 사용한 그랜드 피아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한다.
오스틴이 물려받은 것은 저택만이 아니었다. 머큐리는 그녀에게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재산 절반을 줬고, 향후 퀸 음악 저작권으로 발생한 수입 가운데 자신의 몫도 그녀 앞으로 돌려놨다. 퀸 음반이 머큐리 사후에도 계속해서 팔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스틴은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돈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머큐리의 임종을 지킨 동성 애인 짐 허튼은 50만 파운드를 물려받는 데 그쳤다. 머큐리의 비서 피터 프리스톤이나 요리사 조 파넬리에게 남겨진 돈과 같은 액수였다.
머큐리는 오스틴에게 막대한 부와 함께 큰 비밀도 남겼다. 그는 오스틴에게 자신이 죽은 뒤 유해를 직접 묻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유해를 묻은 장소를 어느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유해가 묻힌 장소는 아직까지도 록 역사상 가장 큰 비밀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오스틴은 20년 넘게 지속된 팬들과 언론의 수많은 질문에도 “프레디를 배신할 수 없다”며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애인 허튼이 아닌 전 여자친구 오스틴이 머큐리의 재산 대부분을 가져가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당연히 머큐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밴드 멤버들도 그녀가 증여받는 재산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오스틴은 지난 2000년 한 인터뷰에서 “프레디가 죽고난 후 몇달 동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그가 떠났다는 사실과 그가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회고했다.
사실 머큐리가 왜 오스틴에게 이토록 큰 재산을 물려주고 떠났는지는 그가 죽기 직전 그녀에게 한 말에 잘 표현돼 있다. 그의 재산을 둘러싼 모든 논란과 여러 논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유언이었다.
“당신이 내 아내였더라면 이것은 어쨌든 당신의 것이었을 거예요.”
머큐리에게는 허튼 외에도 몇명의 동성 애인이 더 있었다. 단지 하룻밤을 같이 보낸 남자는 수백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행적으로 미뤄보면, 그의 진정하고 유일한 “Love of My Life”는 오스틴이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