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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산증인' 故 이기택 총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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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기자I 2016.02.20 18:35:38

7선 국회의원 지낸 야권 거목
YS·DJ와 함께 민주화운동 선봉에..
이회창·노무현·이명박 지지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이 전 총재는 1937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부산 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고려대 재학 시절에는 1960년 자유당 부정 선거에 항의하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 운동은 훗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1961년 정계에 입문한 이 전 총재는 1967년 신민당 소속 전국구로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부산 동래에서 8~10대 의원을 내리 역임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했지만 12~14대 총선에서 연달아 국회의원이 됐다. 12~13대는 부산 해운대에서 당선됐다. 이 전 총재는 신민당 사무총장 및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국회 5공비리조사 특별위원장을 두루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인한 민주자유당 창당에 반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길 의원, 무소속 홍사덕 이철 의원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이라 불린 민주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선출됐다.

이후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해 민주당 창당에 기여하고 공동 대표가 됐다. 1992년 김대중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하자 민주당 대표가 되면서 야당의 총수로 거듭났다. 그러나 1995년 김 전 대통령이 정치에 복귀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는 과정에서는 배제됐다.

통합민주당 총재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신한국당 김운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7년 경북 포항 북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지만 역시 박태준 회장에 밀려 낙선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당하면서 1998년에는 한나라당 총재대행을 지냈다.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이 후보의 독선에 반발하며 탈당, 민주국민당에 몸담았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산상고 후배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새천년민주당 중앙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이후 참여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며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이 후보가 고려대학교 후배이면서 고향인 포항 후배였다. 이후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의씨와 아들 성호씨 등 1남 3녀가 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가 누나다.

빈소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서울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에 차려진다. 일반인 방문객도 제한 없이 조문할 수 있다. 발인은 오는 24일이며 장지는 4·19 국립묘지로 정해졌다. 전화 (02)2258-5940

한편 새누리당은 이날 김영우 수석대변인의 구두논평을 통해 “이 전 총재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고 7선의원을 지낸 현실 정치인으로서 평생 강직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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