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랴 세금내랴..소비여력 없다

최정희 기자I 2013.07.14 19:09:39

가처분소득대비 가계부채 2003년 카드대란때보다 높아
1분기 민간소비 0.4% 줄어 2009년 1분기 이후 최대 추락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 지방에서 닭갈비 음식점을 운영하는 구 씨(51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돼 체인점까지 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주춤하더니 4월부턴 매출이 월평균 5000만원에서 1000만원 가량 줄었다. 구 씨는 “보통 5월은 가정의 달이라 외식이 늘어 장사가 잘되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며 “아르바이트생 세 명을 잘랐다”고 말했다.

요즘 장사가 안 돼 한숨 쉬는 가게들이 늘고 있다. 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밖에 오르지 않는 등 1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데도 소비자들의 지갑은 얼어붙었다.

◇ 빚이 소비를 옥죈다

15일 한국은행의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지난해 4분기보다 0.4% 떨어졌다.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1분기(-0.4%)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수치다. 소비 감소는 가계부채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그런데 그 정도가 2003~2004년 벌어졌던 카드사태 때보다 더 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비영리단체 포함)부채 비율은 163.8%로 2003년(126.5%)보다 훨씬 높아졌다. 당시엔 부채로 다시 빚을 갚기보다 소비를 많이 해 가계부채가 오히려 소비둔화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엔 빚 갚기에 급급해졌다. 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부채비율이 높아 경기가 나아지더라도 민간소비 회복을 장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며 “미국, 영국 등 주요국들은 디레버리징(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에서 부채 비중을 낮추는 것)으로 부채비율이 낮아져 주택시장과 소비가 반등했다”고 말했다. 빚을 줄여야 소비가 는다는 얘기다.

◇ 준조세, 소득보다 더 빨리 증가

근본적으로 경제 전체가 살아나야 기업 투자도 늘고 그만큼 고용이나 급여도 증가, 소비 진작으로 이어진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현욱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세계 경제상황이 안 좋다보니 기업 투자도 위축되고 돈 있는 사람도 소비를 늦추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더 벌어야 더 쓴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지출로 나가는 부담은 점차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실질소득은 전년동기보다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비소비지출은 1.5%나 늘었다. 비소비지출은 세금이나 4대보험, 이자비용 등 소득에서 어쩔 수 없이 빠져나가는 돈을 말한다. 소득이 증가하기 바쁘게 준조세는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일각에선 기업이 과도하게 갖고 있는 현금을 풀 경우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측면이 있다”며 “이러한 자금이 투자나 배당, 급여 형태로 지출될 경우 소비 증가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락, 문화 부문의 규제완화를 통해 고소득층의 국내 소비를 늘릴 필요성도 제기됐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구조적으로 오락, 문화 등의 서비스 공급이 부족해 고소득층이 해외에 나가 쓰는 경우도 있다”며 “관련 분야의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이 소비진작책”이라고 밝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