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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금융]②소비자보호 이대론 안된다

김보경 기자I 2011.03.30 09:40:45

[창간기획 코리아3.0 4부]
소비자보호, 금융사 생존 위한 필수요건
실적위주 상술에 소비자 피해 줄지않아
금감원 소비자보호 허술한 금융사 제재 없어
민원건수 공개·수락의제제도 도입 추진

[이데일리 김보경 김도년 기자] 약속과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금융산업에서 소비자보호는 금융회사가 갖춰야할 '덕목'이 아니라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필수 요소다. 아무리 실적이 좋아도 소비자보호에 소홀하면 언젠가는 소비자들은 금융회사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신뢰가 없는 금융회사는 그 존재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특히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점차 발달되고 있는 SNS환경은 소비자보호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땜질식 처방'에서 애초부터 소비자 중심의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패러다임으로 바꿔야하는 확실한 계기를 만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SNS를 통해 각종 정보와 소비자피해 사례를 보다 빠르고 넓게 곳곳에 옮기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 지난 14일 영업정지 당한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의 금융감독원 앞 항의집회 모습.

'나만의 피해가 아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소비자들은 결집하고 있고 결국 집단소송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소송의 승패를 떠나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금융회사는 장기간 쌓아왔던 신뢰를 잃게 된다.
 
"좋은 평판을 만드는데 20년이 걸리나 이를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족하다"는 워렌 버핏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보험사 고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튼튼했던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분쟁과 관련한 집단소송에서 패소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최근 금감원이 불완전판매 근절 등 소비자보호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보호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 집단소송으로 인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실적위주 금융회사..소비자는 봉(?) 
 
그러나 아직까지도 신뢰보다는 단기실적을 택한 금융회사들로 인한 소비자피해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자산규모 10조가 넘는 저축은행입니다. 우리가 위험하면 다른 곳도 다 위험해요" 예금자보호 한도인 5000만원이 넘는 예금을 유도했던 저축은행 창구직원의 말에 이자수익이나 벌어볼까하고 뭉칫돈을 넣었다가 영업정지로 발을 동동 구른 저축은행 예금자.
 
은행이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의 서류에 슬며시 끼워넣은 카드신청서에 무심코 싸인을 했다가 몇장이 있는지도 모르는 카드 갯수 때문에 신용등급이 깎인 대출자. 
 
더 좋은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보험설계사의 말에 승환계약(보험 설계사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기존 고객의 계약을 해약한 뒤 새로운 회사의 보험계약으로 다시 가입시키는 것)을 하면서 금리가 좋고 보장범위가 넓은 유리한 보험을 해약하게 되는 보험계약자.
 
한때 유행했던 '보험리모델링'도 소비자들을 기만한 대표적 사례다. 중복되는 보험을 정리해 꼭 필요한 보험만 유지하자는 취지는 얼핏 좋아보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예전에 고금리를 보장했던 상품을 팔았던 보험사들이 저금리 기조에 '이차역마진' 부담을 줄이고자 자연스럽게 계약자들의 해약을 유도했던 전략이다.
 
특히 소비자보호에 가장 취약해 민원이 많은 보험사들은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철저히 '갑'의 위치를 보전하는 곳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보험약관이 이들의 무기다. 민원의 대부분이 보험금 산정 때문이고 보험금 산정의 기준은 계약할 때 받는 약관에 나와있다.
 
그러나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인과관계로 서술된 약관은 일반인들이 100% 이해할 수 없다. 이 약관을 쉽게 고치면 민원은 대폭 줄어들겠지만 보험사들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보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가입시키면 골치만 아프다"며 "이러한 이유로 보험계약 기피 대상 1호가 타 보험사 직원"이라고 귀뜸한 보험업계 관계자의 말은 결국 보험을 모르는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영업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 소극적 감독에 개선노력 안하는 금융사들 

이러한 소비자들의 피해는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감독도 한 몫을 했다. 금융감독원은 매년 4월 `금융회사의 고객수와 규모에 비해 민원이 얼마나 들어왔나`를 평가해 1~5등급으로 각 금융회사의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이 민원등급은 무척 민감할 것 같지만 매년 최하위 등급에 이름을 올리는 '만년꼴찌' 회사들이 있다. 민원평가에 대한 제재가 없기 때문에 민원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금융회사와 소비자간 힘의 균형을 이루려면 정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최근 강화되고 있는 공시제도도 '빚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자동차보험과 관련, 보험사들이 보험료 조정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공시하도록 했다.
 
보험사들은 당국의 조치에 따라 공시를 하기는 하지만 홈페이지 하단에 깨알같은 글씨를 찾아서 몇번의 단계를 거쳐야만 보험료 조정결정이 보이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공시행태에 대해 비판이 있었고 당국은 시정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도 보험료 조정공시는 보험사 홈페이지에 숨겨져 있다.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지난해 자동차보험료를 비롯해 여러가지 공시제도가 마련됐지만 공시란을 찾기도 어렵고 너무 복잡한 체계로 돼 있어 소비자들이 공시를 이용해 정보를 얻기는 힘들다"며 "공시가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알릴의무'만 했다는 생색내기용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어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에서도 생색내기용 공시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건전성이 안좋아진 저축은행들은 `뱅크런`을 우려해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았고 공시를 통해 사전경고를 받아보지 못한 예금자들은 결국 영업정지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당국은 소극적인 제재만 가했을 뿐 그 내용을 발표하거나 공시를 강제하지 못했다.
 
정홍주 한국금융소비자학회장은 "금융회사들은 공시를 하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을 공시하거나 허위공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들에게 쓸모있는 공시를 위해 금융당국은 무엇을 어떻게 공시해야 하는지를 정리해주고 공시관련 평가를 통해 상벌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적나라한 민원건수 공개 추진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부터 금융회사가 평판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신경써야 할 각종 소비자보호제도가 도입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회사별 민원건수를 공개하는 네임앤쉐임(Name&Shame)공시 제도다. `네임앤쉐임` 공시는 회사별 민원건수를 낱낱이 공개하는 것으로 기존의 등급 산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복성·선전성 민원까지 건수에 포함할지는 아직 검토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의 민원건수가 낱낱이 공개되면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민원을 줄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와 소비자간 분쟁시 금감원의 분쟁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금융회사들도 부담이 커지게 된다. 수락의제제도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락의제제도는 금감원의 분쟁조정결과 통보를 받은 금융회사가 20일 안에 수락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조정결과를 수락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이와 반대로 20일 안에 분쟁조정 결과에 대한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그 결과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금융회사가 분쟁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금감원에 거부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소비자들 눈치도 있고 당국에 대한 눈치도 있어서 부담스러워 진다"며 "결국 소비자에게 유리한 분쟁조정 결과를 금융회사들이 받아들이는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올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는 분쟁조정시에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회사들은 소송을 제기하면 분쟁조정절차가 중단된다는 점을 노려 소송을 남발해왔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소송을 걸면 소비자들은 분쟁조정도 받을 수 없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불리한 경우가 많다"며 "이같은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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