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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용익의 록코노믹스]인종차별로 시작된 '악마의 음악'

피용익 기자I 2017.10.28 17:36:58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매년 10월 31일 밤이 되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선 ‘어둠의 축제’가 시작된다. 주황색 호박의 속을 파내고 눈·코·입을 만든 등불 ‘잭-오-랜턴’으로 집을 장식하는가 하면,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트릭 오어 트릿’을 외치고 사탕을 받아먹는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선 괴물이나 귀신 분장을 한 수천명의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린다. 핼러윈이다.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의 축제에서 기원했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망자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 때 사람들은 악령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서 자신을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런 전통이 오늘날 핼러윈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과 악령 같은 유래 때문에 핼러윈은 비슷한 이미지를 공유하는 록 음악과도 뗄 수 없는 축제가 됐다. 앨리스 쿠퍼, 킹 다이아몬드, 마릴린 맨슨처럼 기괴한 분장을 하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록 뮤지션들의 노래는 할로윈의 단골 플레이리스트다. 이러한 현상은 록이 ‘악마의 음악’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굳게 만들기도 한다.

2016년 뉴욕에서 열린 할로윈 퍼레이드에 등장한 호박 모양의 조형물. (사진=AFP)
그런데 록은 언제부터 악마의 음악으로 불렸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선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로큰롤의 탄생에 영향을 준 리듬 앤 블루스(R&B)와 재즈는 모두 흑인 음악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음악을 ‘인종음악(race music)’이라는 다분히 차별적 단어로 지칭했다. 인종음악에서 발전한 로큰롤 역시 초기에는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됐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하기 전까지 로큰롤은 흑인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당시 백인들은 흑인이 만든 음악을 듣는 것을 꺼렸다. 심한 경우에는 흑인이 부른 노래가 담긴 음반을 만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은 달랐다. 흑인들이 연주하는 로큰롤에 열광했다. 이러한 현상을 주류 사회의 백인 어른들은 당연히 달가워하지 않았다. 백인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로큰롤을 듣지 못하게 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로큰롤’이라는 단어는 흑인들 사이에서 성행위를 뜻하는 속어로 사용되는 말이었다. 백인들은 기존 가수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로큰롤 뮤지션들의 자극적인 몸짓을 보면서 성행위를 떠올렸다.

급기야 백인 중심의 기독교인들이 로큰롤 반대 운동을 벌였다. 목사들은 로큰롤을 ‘악마의 음악’이라고 칭하면서 교인들로 하여금 로큰롤 음반을 불태울 것을 지시했다. 수많은 로큰롤 음반이 불 속으로 던져졌다. 교회와 록 음악계의 오랜 악연의 시작이었다.

백인 기독교인들은 표면적으로는 로큰롤 노래의 성적인 가사를 문제삼았지만, 사실 이들이 두려워한 것은 흑인 문화가 백인 젊은이들을 물들이는 것이었다.

갑자기 대세가 된 로큰롤의 인기로 인해 무대가 좁아진 기존 인기 가수들도 교회를 지지하고 나섰다. 1940년대 최고 스타였던 프랭크 시나트라가 대표적이다. 그는 엘비스의 음악에 대해 “썩은 냄새가 나는 최음제”라고 혹평하며 “그의 음악은 젊은이들의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대중음악의 대세가 된 로큰롤을 기독교가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엘비스에 이어 수많은 백인 로큰롤 뮤지션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로큰롤은 더 이상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니었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선 교회에서도 로큰롤 음악 형식을 도입한 가스펠을 부르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렇다고 해서 로큰롤을 악마의 음악으로 보는 시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58년 로큰롤 뮤지션 제리 리 루이스가 13살 소녀와 결혼하고, 척 베리가 매춘 행위에 연루된 사건은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리며 로큰롤 음악 자체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1960년대에 등장한 영국 록 밴드 롤링 스톤즈의 퇴폐적인 스타일과 지미 헨드릭스 등 사이키델릭 록 뮤지션들의 마약 복용은 록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했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비틀즈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기독교인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뮤지션들은 오히려 악마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블랙 사바스는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는 음산한 음악으로 악마주의의 상징이 됐다. 블랙 사바스와 함께 헤비메탈 음악을 개척한 레드 제플린도 사타니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들의 대표곡인 Stairway to Heaven을 거꾸로 틀면 ‘Here’s to my sweet Satan’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악마의 메시지가 나온다는 주장은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1980년대 헤비메탈 밴드들은 종교적 신념에서든 상업적 이유에서든 일부러 악마주의를 표방했다. 머틀리 크루, 아이언 메이든, 주다스 프리스트 등은 사타니즘 논란 속에서도 대중을 사로잡았다. 슬레이어처럼 아예 대놓고 사탄과 지옥을 노래하는 밴드들도 인기를 끌었다. 로니 제임스 디오가 유행시킨 ‘악마의 뿔’ 손 모양은 이 시기부터 록 뮤지션들의 상징이 됐다. 교회가 악마를 핑계로 주도한 인종차별 운동이 오히려 악마주의 음악을 키운 것은 아이러니하다.

킹 다이아몬드.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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