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별 따로 놀던 정부 시스템 바꿔야”…국가망 장애, 전문가 제언은?

김가은 기자I 2023.11.26 17:38:59

10일간 이어진 전산망 '먹통 릴레이'
"시스템 운영관리·유지보수 예산 확보 필요"
"국가 CTO 등 통합 IT 거버넌스 확립해야"
"라우터 장비 문제? SW·데이터 재점검 절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데일리 김가은 기자] 열흘간 이어진 국가·공공기관 전산망 시스템 ‘먹통’ 사태에 대한 정부 해명을 두고 전문가들이 연일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전자정부의 시스템운영과 관리에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만큼, 땜질식 해결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자정부에 인공지능(AI)·클라우드 도입을 논의하기 전에 안정적인 운영 기반부터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놓고선 크게 3가지 지적이 나온다. ①기존 시스템에 대한 운영·관리 역량과 예산 부족 ②국가 정보기술(IT) 거버넌스 부재 ③근본적 원인 규명 의지 부족이다.

특히 행정망과 연계된 타 기관의 시스템들에서 줄줄이 장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행정안전부가 원인으로 지목한 네트워크 장비 ‘라우터’의 포트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 중이다. 소프트웨어(SW)·데이터 영역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부 IT 시스템 전문성·예산 부족 도마

25일 행정안전부는 브리핑을 통해 지난 17일 발생한 행정망 장애가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와 케이블을 연결하는 일부 모듈의 포트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연결 단자가 고장나 케이블을 연결해도 데이터가 제대로 전송되지 않아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여러 정부·공공기관의 시스템이 연계돼 있는 행정망에 대한 행안부가 운영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결론이다. 각 부처와 기관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는 오랜 시간 지적돼 온 고질적 문제다. 국내 한 IT 전문가는 “현장에서 느낀 한계점은 공공 담당자들이 시스템 현황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물론, 낙후돼 있거나 해서는 안되는 기술적 구성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토로했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장비는 정상 작동 여부를 상시 체크하게 돼 있는데, 행안부가 그동안 제대로 안 한 것”이라며 “네트워크나 컴퓨터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나 행안부는 이런 문제를 살펴야 했다”고 설명했다.

지속 감소 추세인 전자정부 시스템 유지보수 예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살펴보면 행안부의 시스템 유지보수 예산은 일제히 감액됐다. 전자정부 지원 사업 예산은 126억원으로 올해 대비 74% 줄었다. 행정정보 공동 이용 시스템 유지보수 예산은 57.71% 감액된 53억7000만원, 모바일 전자정부 구축사업 예산은 지난 21년보다 73% 줄어든 8억원으로 편성됐다. 지방재정 정보화 사업 예산 또한 2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내년에는 75.54% 쪼그라든 56억원에 불과하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예산이 지속적으로 절감되고 있어 제대로 품질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라며 “실천할 수 있는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빠듯한 재정을 깎아가면서 무리할 수밖에 없는 돌려막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에서 5번째)이 지난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정부 박람회 디지털플랫폼정부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한 모습(사진=김가은 기자)
◇국가 IT 시스템 통합할 새 거버넌스 체계 필요

‘파편화’된 국가 IT 정책과 전략을 통합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 부처별로 시스템통합(SI)사와 계약을 맺어 시스템을 구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된 관점으로 처음부터 재설계해야만 공공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송호철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민간위원(더존비즈온 플랫폼사업부문 대표)은 “각 부처와 기관별로 예산을 집행해 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니 ‘고립(사일로)화’가 되는 것”이라며 “미국, 영국 등 해외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각 부처나 정부의 연구개발(R&D) 등 정책의 큰 방향을 조절하는 IT·데이터 거버넌스 체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첫 번째로 필요한 건 조직을 바꾸는 것으로, 각 시스템의 공통 요소를 뽑아 통합하고 아키텍처를 조율하는 국가 CTO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SW·데이터 중심 재점검 필요

금융정보분석원(FIU) 시스템 설계자이자 국내 1호 전산학 박사인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짚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네트워크 라우터 장비 포트 문제라면 △경찰청 범죄신고시스템 △차세대 주민등록시스템 △조달청 나라장터 △정부 전자증명서·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등 행정망 장애 이후 연쇄적으로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이 설명되지 않아서다. SW·데이터 영역에 대한 재점검에 돌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문 교수는 “장애를 일으킨 시스템들은 모두 행정망이 돌아가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이라 문제에 연쇄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번 행안부의 해명은 SW와 데이터 설계 문제를 완전히 도외시한 부분 진단에 불과한 ‘반쪽짜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행안부 행정망이 마치 ‘주 전원’ 스위치 역할을 하고 있어 ‘데이터 레벨’에서 시스템간 연계성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과거 금융정보분석원(FIU) 시스템을 개편한 것처럼 통합데이터맵 기반으로 행안부시스템을 재설계하면 행정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가 제시한 ‘통합데이터 지도’ 기반 시스템 재구축은 이미 FIU를 통해 효과성이 검증된 방법이다. 문제 발생시 데이터 지도를 통해 빠르게 사안을 파악할 수 있어서다. 문 교수는 “IT의 60%가 SW고 하드웨어가 40%”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임시 응급 땜질 처방에 불과해 언제 또다른 곳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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