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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은 시작부터 반발에 직면했다. ‘베를린 구상’과 ‘한반도 운전자론’으로 상징되는 문 대통령의 평화 로드맵에 대한 비아냥이 난무했다. 냉혹한 국제질서의 ABC로 모르는 허황된 이상론이라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강력한 뚝심과 의지로 돌파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중재에 대화를 선택했다.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한반도에 어른거리던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말끔히 지워냈다. 군사적 대결에 의한 적대적 긴장관계는 평화의 해빙무드로 바뀌었다. 박수와 갈채가 쏟아졌다. 문제는 내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무산과 북미대화 교착국면의 장기화로 오리무중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사정 악화와 지지율 하락도 부담이다. 자칫 외교안보 분야 추진 동력마저 약화될 수 있다.
◇‘김정은 이끌고 트럼프 밀고’…남북관계 획기적 개선과 북미대화 중재
문 대통령은 올해 한반도 외교안보 환경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과 북미정상간 첫 대화를 이끌며 평화 전도사로 활약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대 성과는 아무래도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대화를 중재한 것이다. 지난 5월말 북미간 신경전 탓에 무산 위기를 맞았다가 회담이 재개된 것도 문 대통령의 공이 컸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등을 밀고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잡아당겼다. 한국전쟁 이후 기나긴 적대관계를 이어온 북미 정상은 65년 만에 한자리에 앉아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에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와 관련,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비웃었던 베를린 구상이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북미정상은 대화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문 대통령을 찾으며 변함없는 신뢰를 재확인했다.
남북관계는 말그대로 ‘상전벽해’였다. 이전 보수정부에서 단절됐던 남북정상간 대화가 복원됐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물꼬를 튼 이후 남북을 오가며 3차례 정상회담이 이어졌다. 사실상 회담이 정례화된 것이다. 성과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남북정상이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것이 가장 상징적이다. 나라밖으로 눈을 돌려도 합격점이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외교의 기틀을 다지면서 외교지평을 다양화한 게 특징이다.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조, 중국과의 사드갈등 해소는 물론 신남방·신북방정책 추진에도 힘을 쏟았다. 특히 신남방정책은 내년 연말 우리나라에서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최대 정점을 맞았다.
◇북미교착 장기화·남남갈등 변수…지지율 하락세 지속에 동력 약화 우려
다만 올해 성적표에도 내년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북미대화 교착국면의 장기화 △보수층 반발에 따른 남남갈등 심화 △경제사정 악화에 따른 지지율 하락 등 3대 난제에 직면했다. 특히 최근에는 문 대통령이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아랑곳없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에만 집착하는 등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보수층의 불만도 분출하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의 최대 장애물인 남남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인 판문점선언은 아직 국회 비준 동의가 이뤄지지 못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비핵화 추가조치와 제재완화 등 상응조치를 각각 압박하는 북미를 중재하는 것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앞서 보수층 반발을 다독여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고 있다.
더구나 지지율 하락도 변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압승과 북미정상회담 개최로 최대 80% 안팎을 기록했던 고공 지지율은 40%대 중후반으로 사실상 반토막이 났다. 지지율이 회복되지 못하고 추가 하락할 경우 상황은 복잡해진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 이행의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 북미대화가 풀리지 않고서는 남북관계 개선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과 잇따른 신뢰구축 조치에도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의 본격화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무산될 경우 북미대화 교착상황은 의외로 장기화될 수 있다. 아울러 국내는 물론 미국 내부에서 ‘비핵화 없이 보상 없다’는 대화 회의론이 더욱 힘을 얻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