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보수화를 우려한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해외로 이전하는 등 경제적 타격도 예상된다. 외교·안보적으로도 이란,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과의 무력 대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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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거센 저항에도 ‘사법개혁’ 법안 가결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현지 언론 및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는 집권 연정이 발의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 2∼3차 독회(讀會)를 열고 법안을 찬성 64표, 반대 0표로 가결 처리했다. 최종 표결을 보이콧한 야당 의원 56명은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지속하며 30시간 가까이 격렬히 저항했지만 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야권은 물론 시민단체 등 상당수 국민들이 표결 결과에 분노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의사당 밖에서는 수만명이 천막을 치고 밤샘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부터 법조계, 의료계, 예비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위 그룹으로 나뉘어 법안 저지를 위해 항의를 지속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대 시위는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 개혁을 발표한 지난 1월 이후 29주 동안 이어졌다.
시위가 격화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생중계 TV 연설을 통해 “3부(입법·사법·행정부) 간의 균형 복원 등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항변하며 오는 11월 말까지 포괄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야당 측과 대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이날 가결된 법안은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법관선정위원회를 통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동안 최고 법원인 대법원은 ‘합리성’에 근거해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 권한을 일반 공무원인 판사가 억제하는 기존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사법 심사’ 권한을 박탈해 사법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이다.
이번 사법 개혁은 사기 및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유죄 판결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법 개혁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방어 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네타냐후 우파 연정이 이스라엘을 헌법 위기에 빠뜨렸다. 군 복무 중요성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가장 신성한 ‘신화’(myths) 일부가 삭제됐다”고 비판했다.
◇둘로 쪼개진 민심 “외교·안보·경제에 치명적” 경고 잇따라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두고 갈라진 민심이 이스라엘 정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분열로 이어지고, 외교·안보 및 경제에도 타격을 입힐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이스라엘 국방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예비군 가운데 수만명은 지난 22일 복무 거부를 선언했다. 이들 예비군은 지난 3월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요아브 갈란트 당시 국방부 장관이 해임된 이후 대다수가 반대 여론으로 돌아섰다. 이스라엘의 한 보수 싱크탱크는 “사법개혁을 둘러싼 공론 분열로 이스라엘 내부적으로 군사적 대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무 거부 선언을 한 예비군엔 시리아 폭격 등 실제 작전에 투입되는 1000여명의 공군 조종사와 정보 및 특수부대 소속 병력이 포함돼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앙숙인 이란은 물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등 이른바 이란의 ‘대리 세력’(proxy)과 무력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경제적 파장도 예상된다. 이스라엘을 기술 국가로 이끈 스타트업 기업 가운데 70%는 사회적 혼란과 보수화를 우려해 일부 사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흐름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150여개 대형 기업과 은행 등이 참여하는 이스라엘 비즈니스 포럼도 총파업 선언으로 반정부 시위에 힘을 실었다. 이스라엘 의료협회는 이날 25일부터 24시간 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을 설계한 법무부 장관은 사법 체계 개편을 위한 추가 입법까지 예고한 상태여서 이스라엘의 혼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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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훼손”…美 등 국제사회 우려 목소리 커질듯
국제 사회에서도 민주주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집권 이후 7개월 만에 성사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네타냐후 총리 초청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미국 백악관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성명을 내고 “바이든 대통령은 그간 민주주의에서 주요한 변화가 계속되려면 가능한 광범위한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혀 왔다”며 “오늘 (의회) 표결이 가능한 가장 적은 수의 찬성으로 진행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정치적 대화를 통해 더 넓은 합의를 도출하려는 이츠하크 헤르조그 이스라엘 대통령과 이스라엘 정치 지도자의 노력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이 직면한 위협과 도전의 크기를 감안할 때 지도자들이 사법정비를 서두르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민을 합의로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며 우려 표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