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70년대 일본에서 애완용으로 처음 도입된 라쿤은 최근 들어 생태계 파괴종으로 지목됐다. 아메리카너구리과 포유류에 속하는 라쿤은 잡식성 동물인데, 다른 동물들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국내에는 동물원과 야생동물카페에서 주로 관리되고 있는 라쿤은 이 시설들을 탈출해 시내를 돌아다니다 구조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음식점 테라스 주변을 배회하는 라쿤이 CCTV에 찍혔는데, 테라스 바닥과 식탁을 코로 훑으며 먹이를 찾는 행동을 보이다 창고에서 과자봉지를 뜯어 먹기도 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에서 유기된 라쿤 두 마리는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등 난폭했고 일반 분양도 어려워 보호 중 안락사됐다.
우리보다 앞서 라쿤을 수입한 일본에서도 유기된 후 야생화된 라쿤들이 농작물과 목조건물 등에 피해를 입혔고, 이로 인해 침입외래생물법 상 특정외래생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앞서 프랑스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라쿤이 서식하는 지역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라쿤이 현재 서식가능한 지역은 원산지인 북미 대부분 지역을 비롯해 남미 중부와 남부,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 유럽 전체와 중동 일부, 중앙아시아 일부, 중국 및 한반도 전체, 동남아시아 일부, 호주 중부와 남부 등지에 걸쳐있다. 사실상 북극·남극권과 사막, 열대지방 등을 제외한 지구 대부분 지역에서 라쿤이 서식할 수 있는 셈.
이처럼 라쿤과 같은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날 경우 현재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서 생태계 전체에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다.
라쿤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크기가 작은 소동물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라쿤은 소형 무척추동물, 개구리 등 양서류, 조류와 그 알, 작은 포유류 등을 먹이로 삼고 있다. 도시환경에 적응한 라쿤의 경우 주로 음식쓰레기 등을 먹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 토론토 요크대 동물행동학 연구자인 수전 맥도널드 교수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라쿤은 귀여워 보이지만 교활한 동물이기도 하다”며 “어떠한 예비지식도, 대응책도 없이 들여올 경우 라쿤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생물들 다수가 희생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20대 국회에서 이용득 의원이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라쿤카페 금지법을 발의해 카페, 음식점 등 동물원이나 수족관으로 등록되지 않은 시설에서 포유류, 조류, 파충류, 양서류에 속하는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지만, 처리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날 환경부 관계자는 “라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은 크지 않지만 유기돼 생태계에 유출될 경우 생존능력이 좋고 국내 고유종인 삵, 오소리, 너구리 등과 서식지를 두고 다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특히 광견병 바이러스 등의 감염원으로 알려져 애완·관람용으로 사람과의 접촉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되면 상업적인 판매 목적의 수입 또는 반입은 지방환경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상업적인 판매 외의 목적일 경우에는 신고를 해야 한다. 또 생태계위해우려 생물을 생태계로 방출·유기 등이 금지되고,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박연재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앞으로 생태계에 유출될 경우 위해 우려가 있는 생물종 등 외래생물에 대해 관리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