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투자, ‘금지’ 빗장 풀고 ‘관리’ 시대로[김기동의 크립토 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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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기자I 2026.03.13 05:30:00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미국은 디지털자산을 전통 금융 시스템에 통합하기 위해 수년간 제도를 정비해 왔다. 회계 기준부터 바꿨다. 2023년 12월 FASB(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는 디지털자산에 공정가치(fair value, 시장 상황을 반영한 가치) 평가제를 도입했다. 스트래티지, 테슬라 같은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장기 자산으로 보유·운용하게 된 것은 이 덕분이다.

2024년 1월에는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은행 등 상장회사가 디지털자산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때 고객이 맡긴 암호화폐의 공정가치만큼 재무제표에 부채로 계상하도록 하는 회계지침(SAB 121)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의 수탁 서비스 제공에 따른 회계 부담이 완화됐다.

최근에는 브로커-딜러(고객 중개와 자기매매를 함께 수행하는 금융투자업자)의 자기자본 산정 시 헤어컷(담보가치 평가 시 차감 비율)도 현실화했다. SEC는 2025년 비트코인·이더리움에 20% 헤어컷 적용을 인정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도 2% 헤어컷 적용을 수용했다. 그 이전에는 디지털자산은 위험자산으로 간주해 사실상 담보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전통 금융기관이 디지털자산을 자본의 핵심으로 품을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이 생긴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장·비상장을 불문하고 모든 법인이 디지털자산을 취득할 수 있다. 반면 우리 금융당국은 이를 사실상 금지해 왔다. 최근에야 “상장사부터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공시의무를 이행하는 투명한 기업부터 시작하겠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실물 경제의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다. 국내 기업에 취업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요는 이미 현장에 와 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에 막혀 기업들은 대표자 개인 계좌를 빌려 쓰는 ‘비정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숫자가 이를 말해준다. 2024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해외 가상자산을 보유한다고 신고한 국내 법인은 47개, 신고 금액은 약 6조 5000억원이다. 해외 집합투자증권(27개 법인, 3조 7000억원)이나 해외 파생상품(24개 법인, 1조 3000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규제가 자본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 법인 중 상장사는 0.3%에 불과하다. 혁신을 주도하는 비상장 스타트업과 중견기업들이 오히려 디지털자산 수요가 더 크다. 법률적 근거도 없이 행정지도로 비상장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용 실명계좌 발급을 차단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법인 참여를 실질화하려면 세 가지 족쇄를 풀어야 한다. 첫째, 회계 기준이다. 우리 기업들의 디지털자산은 K-IFRS 상 ‘무형자산’ 분류에 묶여 있다. 가격이 내리면 손실이지만 올라도 이익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기업에 회계적 페널티를 강요하는 구조다. 스테이블코인을 ‘현금성 자산’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시급하다. 이 기준이 없으면 기업은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둘째, 파생상품 규제다. 해외 시장은 선물·옵션·무기한 선물 등 다양한 헤지 수단을 제공한다. 국내는 사실상 현물 매수 외에 선택지가 없다. 하락장에서 리스크를 관리할 수단 자체가 없는 것이다. 셋째, 과도한 거래 규제다. 건별 거래 목적 확인이나 반복적인 자금 원천 소명 요구는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거래의 적시성을 훼손한다.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도 ‘위험 기반 접근법’을 권고한다. 모든 거래를 동일하게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크기에 비례해 규제 강도를 조정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장 여부라는 인위적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두려움이 앞서면 혁신은 없다. 이제는 ‘무조건적 금지’가 아닌 ‘정교한 관리’로 나아가야 한다. 법인 지갑 등록과 전문 수탁(Custody) 업체 의무화를 결합하면 디지털자산은 현금보다 훨씬 투명하게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통제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투명성을 역이용하면 된다.

법인의 디지털자산 투자는 탈법 조장이 아니다. 기업의 재무 전략을 혁신하고 미래 금융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정부는 ‘지연된 허용’이라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의 목적은 금지가 아니라 안전한 길을 열어주고 그 위에서 일탈하는 자를 감시하는 데 있어야 한다.

■김기동 대표변호사=25년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 원전비리수사 단장, 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중요 수사 부서 책임자를 도맡았다. 기업·금융 분야 로펌 로백스(LawVax)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금융 전문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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