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항일과 반공·반독재 민주화 인권 운동에 힘써온 죽천 송 선생은 1924년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11대손으로 대전에서 태어났다.
삼성초과 대전중·연희전문을 거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1회)를 졸업했다.
이후 일제말 창씨개명과 강제징병을 거부, 출가해 항일대열에 합류했고, 1950년 6·25전쟁 당시에는 노모와 처자를 두고 정훈장교로 자원입대해 3개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군에서 전역한 후에는 1956년 조병옥 박사의 천거로 민주당에 입당해 대덕군당 위원장으로 자유당 독재에 항거해 지역에서 4·19혁명을 주도했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에는 계엄포고령 위반혐의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실형을 받고 정치활동 규제자로 묶인 바 있다. 유신체제 하에서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 실형 중 10·26사태 후 출옥했다.
1980년대 광주항쟁 당시 보안사에 체포·구금됐고,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는 대전과 충남지역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 특히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이자 이념과 노선을 공유한 ‘DJ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1967년 김 전 대통령이 대전에서 연 3선 개헌 반대 시국강연회 당시 강연에 매료돼 이후 40년 넘게 DJ의 노선과 이념을 충실히 이행했다.
명문가의 자손으로 만석지기였던 선생은 일생을 정의와 신념으로 올곧게 살면서 청빈과 검소, 박애정신을 실천하며, 지역에서 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용주(사업)·용길(대전평생교육진흥원장)·윤령(서울 양화중교사) 씨 등 2남 5녀와 이은봉(광주대 문창과 교수)·이경수(삼성스틸 대표이사)·윤종훈(서울장훈고 교장)·이철환(선엔지니어링건축사무소 상무)·박종인(케이엠에이치하이텍 부사장·전 아시아경제 편집국장) 씨 등이 있다.
빈소는 건양대병원 장례식장(042-600-6660)에 차려졌고, 발인은 6일 오전 10시다. 장지는 대전 동구 주산동 자택 뒷산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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