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출에서 비자금 조성까지 원스톱 불법 외환거래
작년 불법 외환거래 적발 총액의 40% 규모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5월, 서울 동대문에서 잘나가는 수출물품 포장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A씨(남, 45세) 회사에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조사관 5명이 들이닥쳤다. A씨는 공항에서 거래처인 일본인 B씨에게서 묵직한 가방 2개를 건네받아 막 회사에 도착한 상황. 조사관들은 가방 2개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 안엔 100만엔 짜리 돈다발이 수두룩. 무려 3억 2000만 엔. 우리 돈으로 47억원 규모다. 조사관들은 공항에서 A씨가 가방을 전달받을 때부터 미행했다. 이날 조사관들이 A씨 회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관세청 개청 이래 사상 최대인 1조 4000억원대의 불법외환거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이 금액은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불법 환거래 총 3조 8000억원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 <자료: 서울본부세관>서울본부세관 직원들이 A씨 가방에서 3억 2000만 엔에 달하는 100만엔짜리 돈다발을 살펴보고 있다. |
12일 관세청에 따르면 A씨 회사는 겉으론 잘 나가는 수출물품 포장회사지만 그들이 진짜 하는 일은 신종 환치기. 2007년부터 일본으로 의류를 수출하는 국내 130여 개의 수출업체를 모집해 밀수출부터 대금회수, 불법 비자금 조성까지 원스톱으로 대행해주는 일명 환치기 전문 업체다.
이 같은 범죄행위에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국내 수출업체가 일본 수입업체에 밀수출하면, 일본 수입업체는 일본에서 A씨와 같은 역할을 하는 B씨에게 수출대금을 지급한다. A씨는 공항에서 B씨를 만나 그 대금을 엔화로 받고 B씨는 세관의 눈을 피해 바로 출국한다. A씨는 그 엔화를 환전상 C씨에게 원화로 교환해 국내 수출업체에 지급하고 수수료 명목으로 39억원 가량을 챙겼다. C씨는 불법 환전을 숨기기 위해 일본인 여권 사본을 이용해 그들이 환전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혐의거래 보고 기준인 5000달러를 넘지 않기 위해 엔화를 쪼개 환전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정상적인 수출거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국내 수출업체는 소득을 누락해 회계처리하고 이는 곧 비자금 조성과 탈세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A씨를 비롯해 C씨 등 환전상 8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B씨 등 일본인 2명에 대해선 지명수배했다. 130개 국내 수출업체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주범인 A씨는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