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걷기 2.0] 즐거운 산길걷기…강원도 계방산

조선일보 기자I 2009.01.15 11:50:00

2009 걷기 프로젝트…주말걷기 2.0
윤치술과 함께 하는 즐거운 산길 걷기

[조선일보 제공] 느릿느릿 5시간… 만만한 겨울산

"특공대 훈련하는 산 아냐? 무지 험할 텐데…." 강원도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용평면에 걸쳐 있는 계방산(桂芳山)에 간다고 했더니 산깨나 안다는 사람들은 걱정부터 했다. '눈꽃으로 유명하긴 한데 산세가 험해 초보자가 섣불리 덤비긴 힘들다'는 의견이었다. 트레킹 전문가 윤치술씨가 해답을 내놨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산을 넘어가길 좋아해요. 출발점에서 정상까지 올랐다가 건너편으로 내려가는 식이죠. 계방산이 힘들다고 하는 분들, 아마 운두령에서 시작해서 반대쪽으로 넘어가셨을 겁니다. 운두령 출발해 정상 갔다 다시 운두령으로 돌아오는 길은 초보라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어요." 
 
▲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걸었더니 오르막도 버겁지 않았다. 운두령에서 계방산 정상 가는 눈길.


정상이 해발 1577m인 계방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한국서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고산(高山)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찻길이 이어지는 산행 시작점 운두령 정상이 해발 1080m이니 70% 높이까지는 힘 안 들이고 올라가는 셈이다. 운두령에서 시작해 산 정상에 닿았다 돌아오는 길은 편도 4.2㎞, 왕복 8.4㎞다. 산길을 걷는 일반적인 속도는 시속 약 2㎞. 왕복 4시간10분 정도(쉬는 시간 제외) 걸린다.

운두령 산길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차 타고 오느라 굳은 몸을 무릎 돌리기와 앉았다 일어나기 같은 가벼운 준비운동으로 푼 다음 계단 108개를 올랐다. 계단이 꽤 가팔라 그 너머 산이 보이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느릿느릿 '저 너머 풍경'으로 들어서려는 듯한 흥분이 느껴졌다.

계단 끝에서 시작되는 산길은 평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만하다. 산 아래 눈이 하나도 없는데도 5분 정도 올랐더니 시야가 온통 흰빛으로 가득 찼다. 발 아래 뽀득뽀득 눈이 밟혔다. 미리 눈을 밟고 지나간 동물들의 발자국이 군데군데 나무 사이에서 인사를 한다. 윤씨는 "아무리 눈이 안 와도 계방산에선 3월까지 눈 구경을 할 수 있다"며 "올해 적설량이 적어 눈꽃이 없다는 게 아쉽다"고 했다.


▲ "주말 걷기 2.0"은 뒷동산 같이 편안한 "강동그린웨이"로 갔다.

 


계방산은 설악산 가리왕산 오대산 태기산 같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홍천의 86%, 평창은 84%가 산이라더니 30분도 안 올랐는데 주변 산이 파도처럼 겹겹이 출렁인다. 길 양쪽 나무들은 다른 산에 비해 키가 작고 듬성듬성하다. 무릎까지도 안 닿는 '산죽(山竹)'만 빼곡하다. 고도가 높고 바람이 세서 나무들이 크게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름 뙤약볕 아래라면 그늘이 없어 걷기 힘든 전형적인 겨울 산의 자태다. 나무 밀도가 낮으니 옆 산의 능선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완만한 산길과 낙타 등 같은 능선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걸었다. 오르막에서 기우뚱거리자 윤씨가 겨울 산길 '원 포인트 레슨(one point lesson)'을 들려줬다. "힘들면 갈지자(之) 모양으로 걸으세요. 높은 산 넘는 찻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것 보셨죠. 비스듬하게 걸으면 힘이 훨씬 덜 들어요. 미끄러질까 걱정될수록 보폭을 줄이시고요."

저 능선에 올라탄 건 구름일까, 눈일까 

▲ 계방산 정상에 서면 설산(雪山)풍경이 사방에서 너울댄다. 대관령 부근 풍력발전 시설이 장난감처럼 작아 보인다. /조선영상미디어

널찍한 정상에선 대관령 풍력발전기, 오대산 굴곡과 용평 스키장 '레인보우' 슬로프 등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김밥이라도 싸올 걸….' 출출한 배를 간식으로 싸온 귤 몇 개를 나누어 까먹으며 달랜 후 온 길로 천천히 돌아 내려갔다. 나무를 밀어 올리는 듯한 능선 사이를 붓 자국 같은 흰 구름들이 통쾌하게 가로질렀다. '평창은 하늘이 낮아서 고개 위가 겨우 석자'라고 읊었던 조선 초 학자 정도전(鄭道傳·1342 ~1398)도 이런 풍경에 반했을까. 

▲ 겨울 산 풍경을 완성하는, 날아갈 듯한 털구름.

●산행 시간표: 오전 8시 승용차 타고 서울서 출발→오전 11시30분 운두령 도착→오후 2시30분 계방산 정상 도착→오후 4시30분 운두령으로 돌아옴.

●준비물: 아이젠 필수. 눈이 신발 속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주는 발 토시와 등산 스틱도 있으면 편하다.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으로 나와 '운두령' 방향 31번 국도로 좌회전. 대중교통으로는 서울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행 버스(오전 6시20분~오후 8시5분 약 40분 간격으로 출발·약 2시간20분 걸린다·성인 1만1900원)를 타고 진부에서 내려 '내면'행 시외버스(오전 9시30분·오후 1시10분·오후 5시 세 차례 있지만 당일 산행을 마치려면 오전 9시30분 버스를 타야 한다·약 20분 소요·성인 2400원)로 갈아타고 '운두령 정상'에서 내린다.

운두령 출발점에 강원도 정통 먹을거리를 파는 '운두령 쉼터'가 있다. 인근 부녀회 회원들이 만드는 쫀득쫀득한 감자전과 시원한 묵은 김치에서 '엄마 손맛'이 느껴진다. 감자전·메밀전병·동동주 각각 5000원, 동동주 1잔 1000원.

평창군청 관광정책과 (033) 330-2542·홍천군청 문화체육과 (033)430-2350·진부터미널 (033)335-6307·장평 콜택시(진부에서 운두령까지 약 2만5000원) (033) 332-4422·동서울터미널 1688-5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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