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People, for the most part, stood their ground firmly. But that ground itself was about to give way.- Joseph A. Schumpeter -
마그리트의 그림들은 인식론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단점이라면 그림들이 좀 어렵다. 그렇게 명석하지 못한 나로서는 수년 전에 본 저 단순한 그림이 큰 충격을 주었다.
나의 인식체계 혹은 지식체계가 한낱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대의 학승이었던 경허 선사는 전염병 마을을 돌다가 자신이 쌓았던 지식체계가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고 그 날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용맹정진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는가.
금융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고 확고하다고 믿었지만 그 논리 혹은 지식체계가 지나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때가 허다하다. 이론은 항상 현실을 뒤따라가기 때문에 직관이 뛰어난 소수를 제외하고는 휩쓸리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부동산 시장도 이런 논쟁에 휩싸여 있다. 여기서는 세계 부동산 가격의 움직임에 대해 하나의 시각으로 이 문제를 해석해 보고자 한다. 다만 부동산 가격 순환에서 나타나는 특징,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세계 부동산 가격, 정책 딜레마와 향후 전개과정,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문제 등으로 각각 나누어서 볼 것이다.
우선 그 첫번째로 세계 각국의 주택가격 상승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주택가격 순환의 동조화, 그리고 동일한 순환이지만 각국의 주택가격 변동성의 차이와 그 이유, 그리고 금리정책과 관련하여 주택가격의 호황과 불황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공통점을 정리해본다. 여기서 부동산 가격을 주택가격 지수를 사용했기 때문에 부동산 경기와 주택 경기를 동일시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양해 바란다.
◇ 세계 부동산 가격 순환의 동행성(co-movement)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나라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빨리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적이 없다고 얘기한다. 비록 최근에 동조화가 커졌지만, 이전에도 부동산 가격은 나라마다 약간의 편차를 가지면서 동조화 현상을 보였다(그림 1).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얼마나 더 오르느냐 그리고 얼마나 좀 더 오래 지속되느냐의 문제일 따름이지 전반적인 순환은 세계적인 순환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부동산 순환에 대한 이러한 현상은 결국 부동산 문제를 살펴봄에 있어서 국지적인 해석이 아니라 보다 글로벌하고 장기적인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2부에서 이를 살펴본다).
◇ 다만 각국마다 고유한 금융제도 등으로 주택가격 변동성이나 상승폭은 차이를 보임
이처럼 부동산 ‘순환’은 세계적으로 이를 생성시키는 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변동성이 작은데 반해 영국과 우리나라는 큰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나라의 금융제도나 금융방식 등에 기인한 고유(idiosyncratic)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미국은 주택가격 변동률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나라이다. 국지적으로 부동산 활황과 버블 붕괴 등을 보이기는 했지만 미국 전체의 주택가격은 안정된 움직임을 보인다. 주택경기가 후퇴하더라도 하락한 적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대비되는 영국은 놀랄만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주택가격 변동이나 금리정책 등은 영국이 우리나라와 흡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미국은 일단 땅이 매우 넓다는 것이 주택가격 안정성의 한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 넓은 땅에 대한 전반적인 투기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는가. 반면에 우리나라나 영국은 땅이 넓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주택금융 방식의 차이다. 미국은 장기고정금리 모기지가 많은 반면에 영국은 거의 변동금리부 모기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주택가격의 변동이 심할 때 금융면에서의 충격을 미국은 금융기관이 담당하고 영국은 주택 소유자가 담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은 80년대 후반 금리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 이후 저축 대부 조합이 대거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비운을 겪었다. 지금은 미국도 최근에 변동금리부 모기지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잔액 기준으로는 장기고정금리 모기지의 비중이 높다.
또한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중요하다. 일본은 주택담보대출을 하면서 주택담보비율을 120%수준까지 확대시켰기 때문에, 주택가격 하락이 닥쳐왔을 때 은행이 그 충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파산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90년대 이후 계속 금융시스템, 경제, 주택가격 등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세계의 부동산 경기 순환을 벗어난 상황이다.
그 외 인구구조 등의 문제가 영향을 준다. 일본은 90년대 이후 이미 노령화되어 버린 반면에 미국은 베이비 붐 세대와 이민 세대들이 주택을 계속 수요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면에서는 일본의 80년대 후반처럼 인구구조 요인으로 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국면이다.
◇ 부동산 가격 순환과 금리정책
부동산의 붐과 하락기에 나타나는 특징 중에서 금리정책을 살펴보자. 우선 T.F.Helbling(2003)이 1970~2002년까지 14개국의 부동산 경기순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참고하였다. 부동산 경기의 침체(bust)를 전후한 정부의 단기금리 정책은 붐에서 침체로 돌아서기 이전 6분기 정도 전에 최저이다. 즉 단기금리를 인상한 이후 6분기 정도 지나서 부동산 경기는 침체로 접어든다. 금리 정책이 부동산 붐의 붕괴를 가져오는데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후 당국은 금리를 한동안 그 수준으로 유지하다가 다시 인하하기 시작한다(그림 2).
미국과 영국의 경우만을 본다면(그림 3) 주택가격증가율 상승 국면의 전환은 금리정책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최근의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해 미국과 영국은 이미 단기금리를 인상하였다. 미국은 아직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영국은 주택가격 상승률이 하락하고 있으나 경기 부진으로 벌써 금리인하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금리가 아닌 미시적인 정책, 혹은 신용의 배분 그리고 세계 금리인상 분위기에 힘입으려고 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아직 의문이다
다음 2부에서는 (그림 1)에서 본 것처럼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주택가격)을 움직인 요인이 무엇이며,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상승률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전자는 미국의 세계 중앙은행으로서의 유동성 공급자 시각에서 해석하며, 후자는 부동산 가격 조절 메커니즘을 무디게 한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를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