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승의 가장 큰 배경은 경제 악화이다. 미국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있지만, 일반 서민, 특히 블루칼라의 소득은 지난 30여 년 동안 정체됐다. 팬데믹 이후 고물가와 생계비 부담은 바이든-해리스 정권에 대한 반감을 키웠다. 트럼프는 본인 집권 1기(2017~2021년)에 비해 지난 4년 동안 미국 경제가 망가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다가 이민 정책을 반대하며 보수진영을 결집했다.
이제 우리는 트럼프 집권2기 새 정부 취임에 대비해 대(對)미국 관계를 차분하게 설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 집권 기간 한미 관계는 평온하고 순조로웠다. 그러나 트럼프의 공화당 집권으로 바뀌더라도 한미 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집권 1기에 비해 이번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었다. 주한 미군 방위비 협상을 다시 해 한국의 부담을 늘릴 것이란 점을 밝혔지만, 통상·산업 분야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미 관계가 양호하고, 국내 기업 다수가 미국에 대거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미국의 전략 산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생산설비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집권하고 있는 스윙 스테이트에 주로 투자됐다. 트럼프 집권2기의 한미 관계는 집권1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이미 지난 집권1기에 트럼프식 협상을 경험했다. 지난 집권1기 우리나라의 대응과정을 복기하고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이 당선될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가 트럼프가 승리하자 패닉에 빠졌다. 미국과의 협상을 조기에 끝내겠다는 목표하에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어이없는 쿼터(TRQ)를 받아들여야 했다.
예전에 비해 국내 기업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고, 대미국 로비 역량도 크게 확충됐다. 트럼프 집권1기에 통상 이슈가 연일 터지면서 우리 기업은 워싱턴의 정책당국 및 의회에 대한 로비 필요성을 절감했다. 과거에는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 미국 현지 사무소를 설치했으나, 이제 기업 대부분이 워싱턴 대관 업무를 크게 늘렸다. 또한 유력 미국 로펌이나 컨설팅사를 고용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투자에 유리한 조치를 적용받게 되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세부사항은 정책 당국이 재량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로비 역량이 높은 기업은 그만큼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었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한미 현안은 주로 방위비와 무역수지 적자 문제로 압축될 것이다. 우리나라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에 예민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늘었고, 올해 흑자 규모는 지난해보다 40% 정도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로 필요한 생산설비와 중간재 수출 증가가 원인이라는 점을 미국에 널리 알려야 한다.
이제부터는 민관 협력 대미 아웃리치를 더욱 내실 있고 효율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기업은 대미 로비 정보를 정부와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소탐대실하는 길이다. 정부와 기업이 정보를 공유하며 손을 잡고 워싱턴 로비에 함께 나설 때 기업의 통상 현안도 풀릴 수 있을 것이다.